친구에게 지적하는 입장도 힘들지만, 친구에게 지적받는 입장은 더 힘들지 않을까. 해든은 아름의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민아와 함께 일할 때도 항상 민아에게 배우는 입장이던 아름, 이제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와서 자신이 세운 원칙과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하는 아름을. 친구일 때는 볼 수 없던 흠 같은 것, 수십 년 산 나무의 깊은 옹이 같은 것을 볼 때마다 친구일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뾰족한 마음이 그를 향했지만, 그 흠까지 포함한 아름의 어딘지 고집스럽고 어수룩하고 열심인 모습을 보며 해든은 생각했다. 나는 저 사람을 미워해봐야 오래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을. - P137
역할이라는 거 정말 어렵지. 그 역할로 인정받고 싶을 때는 더욱더, 그러던 중에 넘어졌다고 생각하면 더욱 더, 자괴감에서 회복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이런 깨달음도 좀 낯설지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이 생각도 언젠가 했던 생각이다. 생각이 돌아왔다. 직업을 바꿨는데도. 어라, 지난여름에 했던 생각이 또 똑같이 도돌이표. 민아에게 게으르고 나태하고 뭉개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키기 싫다는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왔는데, 여전했다. 나라는 캐릭터라는 거 정말 지겹고도 낯설지. 그런 애라는 거 아는데도, 모른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140
그래, 가끔 선배가 좋게 말해주지 않을 때가 있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스렸다. 좋게 말한다는 건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한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한 바를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히 말해준다는 뜻이었다. 아름은 그렇게 생각했다. - P143
이제 퇴원해? 일은? 일하면서 뭐 먹니? 죽 좀 보내줄까? 아님 반찬? 고기? 되레 그런 걱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색해한 건 민아 자신이었다. 어, 아니, 응, 고마워······ 같은 말을 어물거리다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언제 이렇게 달라진 걸까. 내가 알던 엄마는 언제까지의 엄마인 걸까. 그리고 나는 평생에 걸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몇 명이나 오해하며 살아갈까. - P168
지금 생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또다른 생의 자신은 어딘가에서 더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건 아무래도 소용없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는 퍽 잘 어울리지 않은가, 하고 민아는 생각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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