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트램에서 나는 한 경찰관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북쪽의 용사‘ 같은 거대하고 밝은색의 콧수염이었다. 그는 경찰관이었다. 여러 장비를 갖추고 무장을 한 건장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그가 나보다 젊다는 걸 알았다. 가정이 있고 가슴과 어깨가 잘 발달했고 땀이 찬 장화를 신은 성인인데 나보다 젊다니! 그런데 나는 서른한 살인데도 불구하고 내 외모와 몸에서 벌써 노화의 육체적 특징들을 발견한다. 나는 아직까지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 P118
약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참나무로 만든, 조각이 새겨진 구식 문이었다. 문에는 유리가 끼워져 있었고 손잡이 역시 유리로 된 것이었다. 꼬인 형태의 그 손잡이는 해가 나는 날이면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문은 간신히 움직였다. 그래서 문을 열려면 마치 술이 가득 든 맥주잔을 들 듯 손잡이를 꽉 잡고 온 힘을 다해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야 했다. 그 문 뒤에는 두 번째 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는데 두 번째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그렇게 해서 두 개의 문 사이는 개폐기가 달린 일종의 통로가 되었는데, 계절에 따라서 먼지, 아니면 습기가 가득했고 맞바람이 심하게 불기도 했다. 혹은 외부의 오래된 유리를 통과하면서 마치 객차의 긴 나무의자를 비추는 해처럼 노랗게 된 햇빛이 가득 차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문의 유리에 붙여 놓은 십자가의 검은 그림자가 계단 하나하나에 꺾이면서 계단 위에 누워 있었다. - P122
이 사람은 거지였다. 밤이 왔다. 갈수록 문 열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약국에서는 불필요한 전등을 껐다. 거지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는 약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제 곧 계단에 있는 자신을 발견해서 쉴 곳을 잃게 될 거라고 예상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졸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윗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발끝으로 자꾸만 서는 모습이 귀 기울여 듣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가 손잡이를 움켜쥐었는데 도망갈 준비를 한 게 분명했다. 사람들이 그를 쫓아냈다. 그는 거리에 나앉았다. […] 길섶에서 물이 졸졸거렸다. 그는 물이 돌 밑에서 마치 물고기처럼 떠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데우려고 춤추듯 종종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한바탕 웃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을 늙은 큐피드로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형체가 둥글둥글하고 작은 날개도 있는데다가 맨발이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더군다나 살짝 춤까지 추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바로 이렇게 차분하게, 사실주의적인 스타일로, 또한 구식으로 장편소설 「거지」를 시작하고 싶었다. - P125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장편소설을 쓰는지 나는 모른다. 졸라E. Zola는 아주 정확하기 짝이 없는 계획을 세웠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날짜와 시간을 아주 정확한 방식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실수하지 않았다. 그는 소설의 각 장들이 몇 월 며칠에 끝을 맺을 것인지 미리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마법의 달력을 작성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내 서류철에는 숫자 ‘1‘이라고 적힌 종이가 최소한 삼백 장은 있다. 이 삼백 장이 「질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삼백 장 중 단 한 장도 최종적인 시작이 되지 못했다. 작가의 테크닉은 매일매일의 체계적인 (마치 근무처럼) 글쓰기로 연마된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는 일할 줄을 모른다. - P126
초점이 맞춰졌다. 식물은 현미경 앞에 놓인 표본처럼 선명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있다. 식물이 아주 커졌다. 나의 시력이 현미경 같은 능력을 획득했다. 나는 거인국에 도착한 걸리버가 된다. 가냘픈 (풀잎 한 가닥의 가치) 꽃 한 송이가 자신의 모습으로 나를 뒤흔든다.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풀잎은 미지의 장엄한 기술로 지어진 축조물처럼 우뚝 솟아 있다. 나는 강력한 구체와 관, 접합부, 마디, 지렛대를 보고 있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꽃의 줄기 위에 비친 태양의 흐릿한 반영이 내게는 지금 눈부신 금속성 섬광으로 보인다. 시각현상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시각현상을 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관찰자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눈의 특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사물, 시각의 결합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에 있다. 에드거 포Edgar A. Poe는 이와 비슷한 현상에 관한 테마를 다룬 단편소설을 썼다. 열린 창문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멀리 위치한 언덕을 따라 움직이는 괴물의 환상 같은 형상을 보았다. 신비로운 공포가 관찰자를 사로잡았다. - P128
에드거 포Edgar A. Poe는 이와 비슷한 현상에 관한 테마를 다룬 단편소설을 썼다. 열린 창문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멀리 위치한 언덕을 따라 움직이는 괴물의 환상 같은 형상을 보았다. 신비로운 공포가 관찰자를 사로잡았다. 그 지역은 콜레라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콜레라의 본질을 보고 있다고, 콜레라의 무시무시한 체현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뒤, 미증유의 크기를 가진 그 괴물이 다름 아닌 아주 흔해 빠진 벌레 한 마리에 지나지 않으며 관찰자가 착시현상의 희생물이 되었음이 밝혀졌다. 멀리 위치한 언덕을 배경으로 투사하면서 벌레가 관찰자의 눈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미줄을 기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착시현상이었다. 새롭게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작가에게는 그런 마법 같은 사진을 연구하는 것이 대단히 유익하다. 덧붙이자면 이것은 기벽이 아니며 전혀 표현주의가 아니다! 반대로 가장 순수하고 가장 건강한 사실주의이다. - P129
이번에는 할머니가 아주 대놓고 고생물학자로 나선다. "바다는 그 후에 생겼어. 예전에 여기는 육지였거든? 그녀가 말한다. "그 육지도 우리 거였어요?" 손녀들이 묻는다. "그래? 내가 말한다. "전부 다 너희들 거였단다! 몇몇 학자들은 달이 언젠가 혜성에 의해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지구의 일부라고 주장해.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태평양이 생겼지. 지금 보듯이 달은 독자적으로 존재해. 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 달도 너희들 것이었단다!" - P133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면?" 보헴스키가 말했다. "안 올 겁니다." 쯔비볼이 말했다.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맑았다. 푸른 하늘이었다. "비는 연인들의 적이지요." 노인이 말했다. "비는 연인들을 정원에서 쫓아버립니다. 도덕을 지키는 악한 파수꾼이지요."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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