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노이만이 침묵에 빠져 친구들이나 가족들과의 대화조차 거부하기 전, 그는 컴퓨터나 기타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한다고.
언어를 이해해 읽고 쓰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놀 줄 알아야 한다고. - P303
국제적인 명성과 자국 내 영웅적인 지위로 사람들 앞에서 말할 자신감을 얻은 이세돌은 이후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바둑 스타일은 남다른 것, 새로운 것, 나만의 것. 누구도 이전에 생각 못한 것이었으면 한다." 그 무렵 그의 재능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 P326
이세돌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으나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최연소로 바둑 최고 단수인 9단에 오른 기사였다. 번뜩이는 기교, 대국을 앞두고 상대를 놀리고 도발하는 버릇, 상대의 자신감을 꺾으려 드는 가시 돋친 말들("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스타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계속되는 잘난 체("이번 게임은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허세는 적뿐만이 아니라 팬을 끌어모았다.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세계 최고다. 나는 누구의 그늘에도 가려진 적이 없다. 기술에 있어서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는 전설로 남고 싶다. 바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의 대국이 오래 살아남기를, 예술작품으로 연구되고 회자되기를 바란다." 그의 대국 방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위험이었다. - P327
그는 무척 성실하게 훈련했으나 무엇보다 자기 창의력에 가장 의존했다. "나는 생각하지 않고 바둑을 둔다. 바둑은 게임도, 스포츠도 아닌, 하나의 예술이다. 체스나 쇼기 같은 게임은 판 위에 모든 말을 두고 시작하지만, 바둑은 빈 판으로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흑돌과 백돌을 추가하며 두 명의 기사가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바둑의 무한한 복잡성은 무에서 비롯된다." - P328
지금껏 눈 뜨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바둑에 바치느라 놓친 것들이 아쉽지는 않은지, 사실상 정규교육이란 걸 받지 않았고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를 앞두었는데 곧 닥쳐올 일에 맞설 준비는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바둑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바둑의 무한한 복잡성은 인간 정신의 내적 작동 방식을 거울처럼 비추며, 바둑의 전술과 수수께끼와 풀 수 없어 보이는 난해함이 바둑을 우리 우주의 아름다움, 혼란, 질서와 유일하게 비견할 인간의 창조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바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돌의 위치와 관계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세에 숨겨진, 거의 감지할 수조차 없는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신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이세돌에게는 승패보다도 바둑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따라서 모든 수를 전부 이해하기 전까지는 절대 게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 P329
허사비스는 체스 상금으로 코모도어사의 아미가 Amiga 컴퓨터를 장만한 뒤 그걸로 코딩을 독학했다. […] 열한 살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만들었다. 능력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바둑을 극도로 단순화한 버전인 리버시 게임을 겨우 할 정도 였으나, 데미스는 자신의 디지털 피조물이 동생을 다섯 판 연속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동생은 겨우 다섯 살이었으므로 유의미한 상대라 할 수는 없었으나, 데미스는 자신이 창조한 작은 AI가 자기 정신의 일부를 외면화한 듯 보인다는 사실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의 프로그램은 버그가 너무 많아 자꾸만 충돌을 일으켰고 컴퓨터를 과열시켰는데, 바로 그 점이, 독자적인 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말하자면 약간의 개성을 프로그램에 부여한 듯했다. 스스로 판단해 수를 두며 게임을 진행한다는 사실보다는, 데미스가 아무리 노력해도 풀 수 없고 완벽히 없앨 수 없는 이상한 루프에 논리 회로가 엉키면서 나타나는 여러 결함과 변덕과 이해할 수 없는 실수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멈춰버리는 버릇이 그러한 인상을 주었다. - P332
왜 그렇게 졌지? 덴마크 남자보다 실력은 한 수 위였는데. 정신이 조금 딴 데 팔렸던 게 문제였다. 몇 달씩이나 맹훈련하고 대회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날이 갈수록 체스보다 더한 강박관념에 잡아먹혀 가끔은 한밤중에도 잠을 못 이루고 근본적인 질문을 고민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어둠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작은 손전등을 들고 과학소설을 읽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각자 침대에서 곤히 잠자는 동안 데미스는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집에서 설거지할 때나 숙제할 때. 핀칠리 센트럴 지하철역에 있는 아버지 가게에서 고장난 장난감을 조립할 때, 언제나 그는 자기 생각에 관한 생각을 했다. 그의 별난 지능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 됐을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었지? 왜 그리 숫자를 잘 이해하는 걸까? 체스판에 펼치는 수와 전술을 어떻게 다 생각해냈을까?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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