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디작고 보잘것없어 그 기원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통해서 새롭고 찬란한 시야가 열리기도 한다. 존재의 고차원적 질서는 바로 그런 것을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런 일이 어쩌면 사방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의식의 경계에 잠재해 있거나 우리를 에워싼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며, 저마다 격렬하게 피어나 반짝일 가능성을 품은 채로 이 세상의 바닥을 뜯어내 그 아래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지도. - P224

다른 누군가의 명성에 가려지진 않을까?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에 내 꿈은 실현될 수밖에 없겠지만, 나의 시대가 가진 기술에 비해서는 너무 앞서나간 것이다. 이 사실을 빤히 알고서 연구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현재를 살아본 적 없으니. 꼬맹이 시절 어두운 열병이 머릿속을 바꿔놓은 후부터는 돈과 가족이 주는 고통과 기쁨 따위에 흔들리지 않으며, 명예나 성공이나 출세에 관한 사람들 생각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놀림감이 되어 망신당하는 일쯤이야 견딜 만했다. 어릿광대. 천박한 세상의 권력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간 하찮은 것들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는 실패작. 하지만 나는 정말로 상관 없다. 나는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꼿꼿이 서서 뚫리지 않은 방패를 든 채 칼자루를 단단히 쥐고서 내 가슴팍 깊이 꽂아 넣는다. 나는 분노하고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내 손으로 칼을 꽂는다. 이제 나를 지탱하는 것은 분노이다. 노여움과 냉담함과 이기심. 그 마음은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나를 파먹고 자신을 살 찌운다. 모든 것은 딱 한 번, 정말로 나를 실성하게 할 뻔했던 분노로부터, 날것의 원한과 맹목적인 광란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좀도둑, 실실대는 악마 존 폰 노이만을 향한 분노와 격분, 증오와 혐오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됐다. - P232

한마디로 나는 새로운 무언가의 탄생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진정한 경이. 더는 기적을 용인하지 않는, 신을 섬기지 않는 이 시대에 일어난 참된 기적. 그것은 선물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해서 사람에게 은밀한 짐을 지운다. 내면에 그런 책임감을 떠안고 살다보면 조금은 말수가 적어지고 겸허해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다. 말로 전달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말들이 저절로 숨결을 얻어서 이렇게 속삭일 것이기 때문이다. 심오한 진실이란 반드시 목격해야 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것을 이해하는 동안에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서는 안 된다고. - P235

가장 단순한 프로그램도 감탄이 나올 만큼 복잡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마구잡이로 뻗어나가고 층층이 쌓인 암호의 탑을 세운다 한들, 그 결과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불모 불변의 땅일 수도 있는 것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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