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한가운데 갇혀 있으니 슬슬 정신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더욱이 초반에는 부지도 완공되기 전이었고 이렇다 할 연구실도 없었기에 나는 내가 정말로 살짝 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게 미쳐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프로젝트의 규모며 일이 진행되는 속도며 우리가 만드는 진짜 무기까지, 모두 다. 사람들이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뉴멕시코의 사막은 뜨거웠지만 많이, 아주 많이 아름다웠다. 로스앨러모스는 암적색 토양의 깎아 지른 절벽 위 메사 언덕에 자리했는데, 나무와 관목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숨막힐 듯한 절경이었고, 내가 가본 어느 곳 보다도 아름다웠다. 뉴욕 출신인 나는 서부가 처음이었기에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화성이나 뭐 그런 곳. 그곳은 신성한 터의 오묘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문명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감시하는 눈도 없고 신조차도 아득해 들여다볼 수 없는 피난처.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 P137

나는 계속 바둑에 돈을 걸었다. 그만큼 매력적이었으니까. 보기에는 단순해서 오 분이면 규칙을 가르칠 수도 있다. 정사각형 격자판에 검은 돌이나 흰 돌을 두어 상대방 돌을 둘러싸고 최대한으로 영토를 장악하면 된다.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미칠 듯이 어렵고 체스보다 훨씬, 훨씬 더 까다롭다. 우리 중 일부는 바둑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바둑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느새 마음을 사로잡아 꿈속에서도 바둑을 뒀다. 무엇을 하건 늘 머리 한쪽에서는 바둑을 뒀다. - P144

그때 그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조언을 건넸다. "자네가 사는 세계를 자네가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야." 그런데 언제나 실실 웃으며 즐거워했던 건 폰 노이만뿐만이 아니었다. 로스앨러모스에서 했던 작업을 돌이켜보면, 아내 일로 겪은 개인적인 비극과 상실, 유럽에서 벌어지던 온갖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시절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남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면서도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장난을 멈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 P149

폭발 시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용접용 안경이 전원에게 주어졌다. 자칫 잘못하면 눈이 멀 수도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2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어두운 안경까지 쓰면 구경은 개뿔 아무것도 안 보일 테지! 게다가 환한 빛 때문에 눈이 상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자외선이다. 자외선은 유리를 통과 못하니 나는 트럭 앞유리창 뒤에 있기로 했다. 그러면 안전하게 그 빌어먹을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맙소사, 그건 나의 착오였다! 섬광의 차원이 달랐다. 번쩍이는 순간 나는 눈이 멀었다고 확신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눈엔 빛 만이 보였다. 하얀빛이 내 눈을 가득 채우고 머릿속을 지웠다. 끔찍하리만치 불투명한 광채가 온 세계를 삭제했다. 빛의 거대 함은 형용할 수 없었고 너무 순식간이라 반응할 새도 없었다. 고개를 뒤로 획 젖히며 시선을 돌리자 황금색, 보라색, 연보라색, 회색, 파란색으로 불타듯 환해진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봉우리와 틈새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정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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