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 P118
롤랑 바르트는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해 묘사함으로써 기다림의 ‘일‘을 강조한다. "나는 방에서 나갈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전화를 걸 수도(통화중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없다. 그래서 누군가 전화를 하면 괴로워하고(똑같은 이유로 해서), 외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사랑의 단상』) 기다리는 사람은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에 비유된다. 그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부동은 그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다른 많은 움직임과 그 질량이 같다. 그가 할 수 있는, 하지 않은 일들을 할 때 필요한 에너지가 그의 기다림에 쓰인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일은 기다리느라고 그가 하지 않은/ 못한 모든 일과 등가이다. 기다리는 데는 힘이 많이 든다. 기다리는 데는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 P119
제때에 도착하는 기다림은 없다. 아무리 빨리 와도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항상 늦는다고 롤랑 바르트는 말한다. 그것은 내가 항상, 어쩔 수 없이 일찍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사람에게 ‘제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와야 할‘ 시간은 없다. 기다리는 사람은 자기가 기다리는 사람이 제때에 오지 않으리라는 것, 예정된 일이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기다림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 P122
죽음만큼 오리라는 사실이 확실한 것은 없다. 죽음만큼 오리라는 사실이 확실하면서도 언제 올지 확실하지 않은 것도 없다. 죽음이 오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고, 죽음이 언제 올지는 확신할 수 없다. 죽음만큼 지연되고 연기되는 것은 없다. 죽음만큼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도 없다. 대개 죽음은 지연되고 연기되지만, 그러나 죽음이 닥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다.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죽음은 온다. 죽음은 게으르고, 동시에 즉흥적이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온다. 늦어질 뿐 철회되지는 않는다. 죽음은 신실해서 온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 P128
내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확정되어 있지도 않다. 내일은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느닷없이 닥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멀기와 가깝기를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내일의 주민이 아니다. - P129
미워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미워할 수는 없다. 사랑하기 위해서도 생각해야 하지만 미워하기 위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듯이 미워하는 사람도 닮아 간다. 미워해서가 아니라, 미워하느라 생각해서이다. 상대방을 닮아가게 하는 것은 사랑의 기능이 아니고 생각의 기능이다. 사랑하느라 생각하든 미워하느라 생각하든 마찬가지다. 생각은 그 대상과의 일치를 지향한다. 사람은 생각한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 P140
유한 속으로 들어온 무한은 유한에 의해, 유한을 통해 이해되고, 시간 속으로 들어온 영원은 시간에 의해, 시간을 통해 해석된다. 이해와 해석은 오해와 왜곡의 과정을 포함한다. 의문과 모호함은 불가피하다. - P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