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도 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줄곧 의심을 품어왔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사랑을 해본 사람 아닐까?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사랑의 진짜 기쁨은 사랑을 주는 데 있다는 걸. 그 기쁨은 사랑을 받을 기회가 없던 사람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 P199
나는 시민으로서 책임감 있게 계속 배워가야 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책임을 공유한다는 것은 책임을 나누고 측정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남들과 함께해야만 한다고도 했다. 생각해보면 책임을 다해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 나는 나대로 계속해서 배우고, 알려줄 수 있는 이들에게 알릴 책임이 있다. - P213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서 ‘규범‘에 대해 배운다. 규범은 우리가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때 지켜야 할 약속으로서, 이 안에 관습, 도덕, 법, 예절 등이 포함된다고 배운다. 즉 법도 인간이 만든 규범의 한 가지다. 이 말은 새로운 법이 필요할 때, 옛날 법이 절대적인 것인 양 거기 구속될 수 없다는 뜻이다. 법이 우리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 이상, 삶이 언제나 먼저다. 법과 제도는 우리 삶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 신분제를 없애는 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스스로 원해서,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비록 삶의 환경이 다르더라도 우리 각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똑같은 권리를 인정받는다. 그게 인권이고,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 그 위에 인간이 있고 삶이 있다. 시민으로서 우리의 연대는 규범보다 먼저다. - P214
이 글을 쓰는 오늘, 방금, 2024년 7월 18일, 기쁜 소식을 들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김선수)가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낸 것이다. "지난 40여 년간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소득 요건과 부양 요건 등이 동일한 상황에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가족 결합의 변화하는 모습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 요구됩니다"라는 판사의 부연이 내 귀에 큰 목소리로 들렸다. 나는 이것이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가는 아주 큰 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이 판결이 있기까지 힘쓴 당사자들과 그들의 동료에게 축하를 전한다. 당연한 것을 위해 싸운만큼, 마음껏 기뻐하고 그 권리를 누리시길 바란다. 또한 그들에게 감사를 전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을 더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어준 데에, 어린이가 살아갈 세상에 더 큰 자유를 준 데에. 오늘은 기쁜 날이다. 우리 세계가 더 넓어졌다. - P215
개인의 작은 고통을 다루어보기만 해도 평범한 일상과 사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기쁠 때 조금은 슬픔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슬픔 속에서도 조금은 웃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 P218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봄은 슬픔과 함께 온다. 함께 기억할 일이 너무 많다. 조금 더 힘이 있는 쪽이 조금 더 짊어지면서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 좋겠다. 봄에 슬픈 사람들을 내버려두지도, 어서 이겨내라고 다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을 꽃이 만든 그늘로 초대하고 싶다. 나도 그 밝은 그늘에 함께 있고 싶다. 웃으면서도 울겠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울고 싶다. - P218
그러니까······ 나 하나쯤은 인생을 좀 대충 살아도 되지 않을까? 부분 부분 망치는 건 정말 티도 안 날 것이다. 무력감이 거의 권태가 될 때, 변하지 않는 세상이 걱정스러울 때, 흔적 없이 사라진 거대한 동상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되는 대로 살아보자. 인생은 소중하지만,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고. 혹시 내 삶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하나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존재하는 게 내 의무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다. - P225
흔히 어린이가 공공장소의 예절을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 어린이들은 대체로 일과를 공공장소에서 보낸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조심하라고 배우고, 나누어 쓰라고 배우고, 조용히 하자는 말을 듣는다. 암만해도 어린이들에게만 뭐라고 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 P243
쉬운 말이 좋다. 쉽게 쓸 수 있으면 쉽게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한 명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느라 작가가 고생하더라도,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읽고 ‘해석‘하는 대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데 힘을 쓰는 게 좋다고 믿는다. 그렇게 쓰려고 노력한다. - P261
이 문제만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면 좋겠다. 일단 ‘노 키즈 존‘이라는 말부터 없애고 보자. 무슨 ‘노 스모킹 존‘도 아니고. 그런 말을 사용하기 전에도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 잘 사 먹고 잘 놀고 잘 구경했다. 사회의 면면이 달라져 제재가 필요해지더라도, 한 가지 사실만은 잊지 않으면 좋겠다. 어린이의 출입을 제한해야 할 때는 오직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때뿐이다. - P267
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나는 어렸을 때 이랬다‘는 기억을 근거로 ‘어린이는 이렇다‘ 또는 ‘어린이는 이래야 한다‘는 정의가 내려지는 식이다. 그렇게 각자 착한, 활달한, 얌전한, 공부 잘하는, 어른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를 떠올리고 주변의 어린이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 어린이가 기대와 다르면 실망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식당에서 안 울었는데 저 아이는 왜 울지?‘ 하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어린이는 자기 자신, 딱 한 명이다. 그것도 자의적으로 정리된 기억이다. 그것만으로 어린이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린이를 이해하려면 눈앞의 어린이를 보아야 한다. - P2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