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있소, 헤라르도 씨
페드로 파라모가 돈을 건네며 말했다. - 돈이란 다시 되살아나는 게 아니니, 잘 간수하시오.
- 하긴 죽은 사람도 다시 되살아나지 않더군요.
그는 여전히 불편한 심사를 감추지 못하고 덧붙였다. - 불행하게도 말입니다. - P159

새벽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날은 거꾸로 어둠을 향해 가고 있었다. 대지에는 마치 지축을 붙들어 고정시킨 경첩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흡사 어둠을 들춰내는 오래된 대지의 꿈틀거림 같은 소리였다. - P165

신부는 그 자리에서 당장 물러나고 싶었다. 성유를 뿌리고 ‘자, 이제 모든 게 끝났습니다.‘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한 여인의 회한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성호를 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회의가 일고 있었다. 어쩌면 그 여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후회나 고해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조차 없는지도 몰랐다. - P173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헛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런 게 내게 남은 유일한 소일거리란 말인가." 이어 그는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렸다. "머지않았어, 머지않았다고." - P178

순간 그는 혼자서 쓸쓸하게 누워 있을 아내를 생각했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마당의 침상 위에 눕혀놓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쿠카, 그녀는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암말처럼 생생히 살아 숨쉬던 아내였다. 잠자리에서 코를 비비고 입술로 깨물던 여자였다. 태어나자마자 죽긴 했지만 그의 아들을 낳아준 여자였다. 시력이 좋지 않고 몸에 냉기가 흐르는 체질에 가슴앓이 병을 앓고 있었기에, 아니 의사의 말에 의하면 이름조차 모르는 병을 앓고 있었기에 자식을 낳을 수 없었다. 왕진을 다녀가는 의사에게 진료비를 지불하기 위해 나귀까지 팔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쿠카, 그녀는 찬 이슬을 맞으며 차디찬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동이 트는 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달려오는 햇살도, 상큼한 아침 바람도, 아무것도 보고 느끼지 못한 채. - P184

그는 눈을 감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던 날, 나는 당신을 쳐다보느라 눈이 멀 정도였어. 당신의 얼굴에 달빛이 스며드는데, 넋을 잃을 수밖에. 달빛이 보드랍게 스쳐 간 얼굴, 별빛이 만든 무지개 빛깔로 촉촉한 입술, 밤의 물결에 투명하게 드러나던 당신의 육신. 수사나, 수사나 산 후안······."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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