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낀다. 내가 있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곳을······.
나는 레몬이 익어가던 계절을 떠올리고 있다. 2월의 바람에 꺾인 저 산의 고사리 꽃대가 마르기 전, 오래된 정원을 그윽하게 채우던 레몬 향기를.
2월의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던 바람을, 나는 기억한다. 구름이 산골짜기 밑으로 데려가 줄 때까지 푸른 하늘에 몰려 있는 동안, 아침 햇살 사이로 불어오던 바람을, 대지 위로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렌지 나무를 심술궂게 흔들어대던 그 바람을.
그사이 참새들은 떨어지는 나뭇잎을 쪼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나비들을 쫓아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들던 참새들을.
2월의 아침은 푸른 하늘과 바람과 참새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열리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 P117

아무도 오지 않았어. 차라리 그게 나았는지도 몰라. 죽음이란 사물이 하나인 것처럼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이니까. 슬픔이란 어느 누구도 함께 찾아 나서는 게 아니니까. - P119

빗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 나는 네게 말했어.
- 나가봐.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에서 지워버릴 거야. 그러니 돌아가라고 해. 장례 미사 치를 돈 때문에 왔다고? 어머니는 일전 한 푼 남기지 않았다고 전해. 미사를 드리지 않으면 구천을 떠돌 거라고? 후스티나, 우리에게 그런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자가 누구라는 거지? 내가 미쳤다고? 그래, 나는 미쳤어. - P119

바람이 불고 있었다. 며칠을 두고 내린 비가 그쳤지만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들판에는 여린 옥수수 이파리들이 바람을 피해 바싹 몸을 숙인 채 엎드려 있었다. 밤이 되자 덩굴나무와 지붕을 뜯어낼 기세로 달려들던 바람이 격노한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하늘에 드리워진 먹장구름을 밀어 내고 있었다. - P1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