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자마자 나는 로버트를 깨워서 옷을 입히고 부축해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인도까지 그를 부축하고 나서야 다시 올라가 포트폴리오를 가져올 수 있었다. 가진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문득 올려다보자 투숙객 몇몇이 수심에 찬 얼굴로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인사했다. "안녕, 안녕." 마치 자신들의 발을 묶고 있는 지옥에서 탈출하는 어린애들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로버트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가 지금 견디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왔다. "다 괜찮아질 거야. 다시 일을 할 거고, 그러면 모두 해결될 거야." 그에게 말했다. "나아지겠지, 패티." - P121
집안 분위기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암울했다. 남동생 토드가 곧 해병대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어머니는 열렬한 애국자이긴 했지만 동생이 베트남에 파병될지도 모른다며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미라이 대학살에 깊이 상심했고, 그 사건을 두고 시인 로버트 번스의 말을 인용해 ‘인간이 저지른 반인류적 행위‘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뒤뜰 화단에 수양버들(weeping willow우는 버드나무)을 심는 걸 지켜봤다. 이 나라가 선택한 길에 대해 아버지가 느끼는 슬픔을 상징하는 듯했다. 많은 이들이 1960년대 이상주의의 장렬한 끝으로 보통 12월 알타몬트에서 열린 롤링스톤스 공연에서 관객들이 피살당한 사건을 든다. 하지만 나는 1969년 여름에 일어난 우드스톡 페스티벌과 맨슨교 숭배라는 이중적인 면을 지닌 두 사건의 혼재야말로 종말의 시작점이었다고 생각한다. - P145
첼시 호텔은 100개의 방이 모여 있지만, 그 각각이 하나의 소우주인 환상지대 속의 인형의 집 같은 묘한 공간이었다. 난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그들의 생각과 영혼을 만나보려 애썼다. 내 모험심은 약간 무모해 열린 문틈 사이로 버질 톰슨의 그랜드피아노를 훔쳐보기도 하고 아서 C. 클라크 명판 근처를 배회하며 혹시나 그가 갑자기 나타나진 않을까 기대하곤 했다. 가끔 독일 출신의 미술사학자 게르트 쉬프 교수가 피카소 작품을 들고 지나치는 걸 보기도 했다. 모두가 나름대로 비범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지만, 부자는 없었다. 성공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도 흥청망청 술을 마실 여유가 다였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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