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내가 몸이 성치 않아서 집에 있는데, 그자가 나타나더니 대뜸 "원기가 회복되려면 맥을 한번 짚어봐야 되겠소."라고 하면서 내 몸을 만지더군. 처음에는 손가락과 손바닥을 만지고, 그러다가 팔다리도 만지고, 나중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손대지 않은 곳이 없었어. 그런데 웃기지도 않는 게, 손길이 닿는 곳마다 응혈이 풀리면서 몸이 뜨거워지는 거야. 생각해 보게, 예언자로 행세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집시 같은 인간이 눈알을 뒤집고 게거품을 무는데, 깜빡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나. 그 바람에 홀라당 옷을 벗은 여자들도 많았지. 그때마다 그 인간은, 여자의 마음속에는 불같은 욕망이 감춰져 있다고 둘러댔어. 딴은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 여자란 때때로 누군가에게 온몸을 내맡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니까. - P32

"이삭을 흔들며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솟았다가 가라앉는 지평선과 겹겹이 굴곡을 이루며 출렁이는 오후의 푸른 들판을 바라보아라. 흙 내음, 그리고 밀과 알팔파 내음. 온통 달콤한 꿀 향기로 가득한 마을······."
[…]
"······그곳에서 세월의 온기를 품고 있는 오렌지 나무 향기를 느껴보아라." - P34

침실 문을 통해 새벽하늘이 보였다. 별은 없었다. 아직은 해가 그 광채를 발하지 않는, 회색의 납빛 하늘이었다.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게 아니라, 초저녁에 사위어가는 빛 같았다. 마당을 밟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듯한 발걸음 소리. 나지막한 소리. 그리고 문들에 서 있는 여인. 날이 새는 것을 막아서는 그녀의 몸짓. 그녀의 양팔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발밑으로 언뜻 드러나는 하늘. 그녀가 서 있는 바닥을 적신 눈물 같은 흩뿌려진 빛. 이어 흐느낌. 그리고 연하지만 날카로운 통곡과 그녀의 몸을 뒤틀리게 만드는 고통. - P43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이었다. 코말라는 불빛이 꺼진 채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늘이 밤을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어.‘ 렌테리아 신부는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나를 지탱해 주는 자들에게 모욕을 준 것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어. 그들은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대주지 않았는가.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구할 게 없어. 기도가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않아. 그것은 사실 아닌가.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는가. 어쨌든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어. 나는 나를 원하고, 나에게 자신의 믿음을 걸었던 사람들을 배신했어. 나를 통해 자신의 뜻이 하느님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기만했어. 그런데 그들이 신앙으로 구한 게 무엇인가. 천국? 아니면 영혼의 정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싶어 하는가. 그것도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