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 유코는 "내가 나에 대해 단언할수록 나는 거짓말이 되었다"고 했고, 엘렌 식수는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이면서도 일부는 나에게서 빠져나간다"고 했다. 비슷한 문장 중 주디스 버틀러의 것을 제일 좋아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 안에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이미 들어와 있다"라는 그의 글을 반복해 읽으면 이미 ‘나‘ 안에 들어와 있는 무언가로 공포영화를 여러 편 찍을 수 있다. 어쨌든 나는 거짓말이고, 어쩌다 남은 것들이고,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의 이웃이므로 나는 나에 대해 말할 수 없음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 P12
나는 늘 집에 창문을 잊지 않고 그리는 내담자였다. 첫 상담에서는 동그란 창을 아주 조그맣게 그렸다. 상담사가 그래도 소통의 의 지가 없지 않네요" 해서 창문의 상징성을 눈치챘다. 나라는 존재의 이 끝과 저 끝 사이 어디쯤에 소통의 의지가 있는지 모른다는 게 다음 문제였다. 가령 내 손가락은 너무도 의지가 넘치는 것 같았지만 타인을 만지기도 타인의 손에 잡히기도 싫어했다. 마음이라는 게 크고 작은 비유로 가득차 있는, 세상의 사물들이 처음과는 다른 모양과 위치로 뒤섞인 고물상과 같다는 걸 눈치챈 건 조금 더 후다. 고물상에는 내 손가락도 있었다. - P14
달빛 아래 템즈 강변에서 나를 굽어보던 그의 이마가 푸르게 빛났다. 그렇다고 말 하자 그가 쑥스러워하며 이마를 문질렀다.
흑인들이 주로 달 밝은 밤에 청혼한다는 말 못 들어봤어?
정말?
농담.
농담이 아니길 바랐다. 그가 언젠가의 달빛에 기대 자신처럼 푸르게 빛나는 이마의 사람에게 청혼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잠시 오렌지빛 가로등이 꺼지길. 마주선 두 사람이 서로를 반사하며 물망의 색으로 물들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그립다. 그런 순간의 목격자가 되고 싶다. 열망의 대상이 아닌 열망들의 목격자. 그는 내게 "정말 거절할 줄 모르네" 하고 웃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진실로 원하는 걸 도무지 몰랐고 결국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