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노크로 성지 순례를 갔다가 막대 사탕과 우산을 가지고 돌아왔다. 마거릿은 바람이 세찬 날을 기다렸다가 날 수 있을 줄 알고 보일러실 담벼락에서 우산을 펴고 뛰어내렸다가 도로에 떨어져 발목이 부러졌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근거 없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그렇게 빨리 증명된다면 좋았을 텐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체로 어둠 속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 P190
5시가 되어 사위가 어두워지자 그녀는 밖으로 나가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풀밭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집 주변의 모든 풀잎에 소변을 보고 싶었지만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풀은 길고 위쪽이 시들했다. 더나고어는 나무 한 그루도, 가을에 시든 나뭇잎 한 장도 볼 수 없는 이상한 곳이었다. 출렁이는 이탄지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구름 아래에서 비명을 지르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밖에 없었다. 풍경은 금속처럼 견고하고 영원해 보였지만 오크 나무와 마가목의 고장에서 온 마거릿에게는 덧없는 느낌이었다. 여름에 그늘도 없을 테고 8월이면 노랗게 익는 보리밭도 없을 것이다. 동쪽에서는 지금쯤 하늘이 낙엽에 가려지고 암소들이 헛간으로 들어가고 젖소들이 칸막이에 묶일 것이다. - P191
다음 날 아침, 마거릿은 재를 비우러 나갔다가 바람에 날린 재가 눈에 들어가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 와서 누구도 해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해치게 두지 않으면서 이 집에서 최대한 오래 살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면 그녀는 다시 이사할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경로를 이어 배를 타고 아란 제도로 건너 가서 아일랜드의 최서단으로 옮길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자. 사람들은 귀찮기만 할 뿐이었다. - P191
마거릿은 사제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산책에서 돌아와 비눗물이 든 대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라디오 너 게일턱터 방송을 듣거나 뜨거운 물병을 안고 그의 침대에 들어가서 램프를 기울여 불빛 각도를 맞춰 그의 책을 읽었다. 가끔 그가 밑줄 친 문단을 발견했지만 대단한 의미는 없었다. 그녀가 이 집에서 마주치는 그 무엇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가끔 마거릿은 침대밑에서 그의 그림자를 보았고, 그녀의 존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의 차가운 존재를 느꼈으며, 그의 풀어진 옷깃과 소매에 들어간 건초 부스러기가 다시 보였지만 사제의 유령일 뿐이었다. - P195
마거릿은 잠들기 전에 벽 너머의 이웃이 침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게 여기긴 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과거는 곧잘 배신을 했고, 천천히 움직였다. 자기만의 속도로 결국은 현재를 따라잡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뭘 할 수 있을까? 후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슬픔은 과거를 다시 불러올 뿐이었다. - P196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밤, 그녀는 절벽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어머니에게 몇 자 적어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해도 마거릿은 알 수 없었다. 바다가 미쳐 날뛰며 땅을 먹어치웠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흠뻑 젖어 있었다. 짭짤한 비 때문에 추우면서도 더웠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마을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마거릿은 난롯불에 이탄을 던져 넣었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이탄이 난로 받침대에서 기분 나쁜 연기를 피웠고, 불꽃으로 타오르지도 못한 채 다 타서 꺼졌다. 마거릿은 나무가, 도끼로 쪼갤 수 있는 커다란 마가목 장작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서리가 내린 맑은 아침에 밖에서 장작을 팬 다음 벽에 기대어 쌓는 모습을, 거기서 어떤 냄새와 열기가 풍길지 상상했다. 그러나 더나고어에는 장작이 드물었다. - P198
그날 밤, 마거릿은 초를 켜고 비눗물에 발을 담근 채 연기를 잔뜩 피우는 이탄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사제가 지옥에 갔을까 생각했다. 사제는 사후 세계를, 하느님과 천국과 연옥을 전부 다 믿었다. 그는 지옥을 믿지 않으면 천국을 믿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마거릿은 자신도 그가 있는 지옥에 갈까 생각했지만 그보다 차라리 푸칸이나 돌소리쟁이가 될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았다. - P199
그는 혼자 죽을 것이라고, 문짝을 다 먹어치우고 나간 조지핀을 누군가 길에서 알아본 다음에야 자기 시체가 발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죽음만큼은 확신했다. 누구나 무언가를 확신해야 했다. 그래야 하루를 이해할 수 있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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