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어요. ‘남편은 자기 씨앗이 없답니다.‘ 이 말을 하는 여자의 태도 때문에 외판원은 초조해졌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죠. 그녀의 수국처럼 파란 수국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런 다음 밖으로 나가 꽃을 만져보았어요. 여자는 수국을 만지는 남자에게 내리쬐는 태양에 끌렸지요. 그녀가 남자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이 그의 목을 만졌고, 그런 다음 그의 엄지가 올라와서 그녀의 입술을 쓸었어요. 놀란의 손보다 부드러웠죠. "당신의 눈은 젖은 모래 색이군요.‘ 남자가 그녀에게 말했어요." - P133
아이는 이 부엌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들이 늘 이렇게 행복하면 좋겠다. "여자는 현관문 옆에 장미 덤불을 심었어요." 마사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놀란은 자기 돈을 그런 데 쓰다니 멍청하다고 말했죠. ‘도대체 어떤 여자가 꽃에다가 돈을 다 써?‘ 그뿐만 아니라 자기한테 제대로 된 저녁 식사도 차려주지 않는다고 책망했어요. ‘일하는 남자 저녁으로 감자랑 양배추는 부족해." "배가 불렀군!" 디건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그가 들을 필요 없는 부분도 있다. 마사는 개를, 딸아이를 끌어들일 것이다. 어디까지 이야기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웃 사람들은 마사가 이 이야기 말고는 한 적 없다는 듯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듣고 있다. 디건이 일어선다. - P134
침묵의 뚜껑이 디건 가족을 덮는다. 너무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할 말이 남지 않았다. 요즘은 이웃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디건은 미사 참례도 그만두었다. 그게 무슨 소용인지 이제 모르겠다. 그는 더 늦게까지 일하고, 먹고, 우유를 짜고, 목요일마다 테이블에 돈을 두고 나간다. - P136
"당신이 딸한테 화풀이한 게 유감스러울 뿐이야." 그녀가 말한다. "그뿐이야." "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어." 그가 처음으로 인정한다. 이제 이 길로 들어서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디건은 더없이 확신에 찬 순간에도 무언가에 끝이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그들은 열기가 너무 뜨거워져서 뒤로 물러나야 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 P140
마사가 딸의 손을 잡는다. 그녀는 모아둔 돈을, 외판원과 못 쓰게 된 붉은 장미들을 생각한다. 여자애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저지가 돌아왔다. 아이가 지금 당장 신경 쓰는 것은 그 사실밖에 없다. 자기가 오빠에게 불붙이는 법을 가르쳐줬다는 생각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그 죄책감은 나중에나 생길 것이다. 디건은 무감각하지만 전보다 가벼워진 느낌이다. 과거의 고역은 사라졌고 새로운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길 웅덩이에 불길이 비쳐 은처럼 밝게 빛난다. 디건이 생각을 붙잡는다. 그에게는 일이 있고, 이건 그저 집일 뿐이고, 그들은 살아 있다. - P140
"누가 신경이나 쓴대?" 아이가 따라가면서 계속 속삭인다. "누가 신경이나 쓴대?" - P141
부모님이 이혼 절차를 밟는 동안 그를 데리고 살았던 할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부재를 느끼지 않은 적이 하루도 없다. 할머니는 인생을 다시 산다면 절대 그 차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느니 거기 남아서 거리의 여자가 되겠다고. 할머니는 남편에게 자식을 아홉 명 낳아주었다. 청년이 차에 다시 탄 이유를 묻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땐 다 그랬어. 난 그렇게 생각했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줄 알았어." - P156
모래톱에 다다르니 슬슬 지친다. 밤이라서 물이 더 차갑고 파도는 더 화가 났지만 그는 늘 그러듯 해안으로 헤엄쳐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쉴 수 있다. 바닥의 모래를 느끼려고 발을 내려본다. 머리 위로 두꺼운 파도가 덮쳐 그를 깊은 물속으로 빠뜨린다. 그가 물을 먹고 얕은 곳을 찾아서 더 멀리 가보지만 바닥이 느껴지지 않는다. 샴페인을 그렇게 마실 생각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영하러 올 생각도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단지 행복한 생일날이었다. 그는 한참 발버둥을 치다가 더 깊이 잠수한다. 오직 숨을 쉬러 위로 올라가면 더 쉬울 것 같다. 공황이 덮치지만 시간이 지나자 평화로운 무언가로 바뀐다. 왜 정반대는 항상 이렇게 가까이 있을까?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고음, 듣기 싫게 찢어지는 소리가 되기 직전의 그 음 같다. 그는 단념하고 수면으로 떠오른다. 헤엄쳐 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둥둥 떠 있다가 서서히 해변을 향해 애쓰며 나아간다. 거리가 무척 멀지만 밤하늘을 등진 리조트 불빛이 선명하고 점점 가까워진다. - P157
얕은 물가에 이르자 해변으로 기어 올라가 모래 위에 쓰러진다. 그가 힘들게 숨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지만 조류가 그의 옷을 가져가 버렸다. 그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종을, 그들에게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를 상상한다. - P158
그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그렇게 먼 길을 가서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는데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강에서는 수영을 그렇게 잘했는데 말이다. 그가 왜 그랬냐고 묻자 할머니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그랬다고 말했다. - P160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는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서 아내가 자는 줄 알고 어둠 속에서 이 말을 소리 내서 했는데, 아내는 때로 누군가를 모욕하지 않기가 더 힘들다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할 약점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아내의 숨소리가 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 잠 못 이루고 누워서 그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뜻이었을까? 여자의 마음은 유리로 만들어졌다. 너무 투명하지만 또 너무 쉽게 깨졌다. 더 단단한 다른 유리 같은 생각에 졌다. 남자를 매료하는 동시에 겁을 주기에 충분했다. - P166
자전거에서 내린 중사는 도로 한편의 주목 아래 가만히 서 있었다. 주목은 심은 시기가 제각각이었고 그 밑에 서서 비를 피하면 기분이 좋았다. 똑같은 검은 연기가 아직도 막사 지붕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서서 지켜보았지만 연기는 변하지 않았다. 도허티가 헛간으로 가는 낌새도 없었다. 강아지는 키운 방식 그대로 개가 된다. - P167
중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익숙한, 차분한 우월감이 찾아왔다. 그보다 못한 이들은 그 느낌에 굳어졌겠지만 중사는 그때야말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가시금작화 밑에서 사정거리 안에 기관총 사격수가 보였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음모를 꾸미는 익숙한 전율, 곤두선 신경. - P169
중사가 꾸러미를 가지고 뒤로 나가서 자전거 짐받이에 조심스럽게 묶었다. 이제 막사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지만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서 잠긴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중사가 왔다는 소리에 멈추었던 대화가 일상적인 담소로 바뀌었지만 그가 가게에 들어가자 그것마저 뚝 끊겼다. 그는 침묵을 헤치고 걸어가면서 항상 느꼈던 그 익숙한 거리감과 우월감을 느꼈다. 그는 이 근처에서 자랐고 사람들은 그의 가족을 알았지만 그는 절대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카운터에 서서 짙은 색 나무의 얼룩을 보았다. - P173
"날씨가 참 사납지 않아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늘 있다. 다른 상황이라면 타인을 죽게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불이 필요한 날씨예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 중사는 누구 한 사람이 나서기를, 대놓고 뭐라 하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의 앞에서는 가볍고 엉큼하게 한가로운 농담이나 할 테고, 중요한 이야기는 그가 떠난 직후에야 나올 것이다. - P173
생각했던 대로였다. 그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지만 내심 틀리기를 바랐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희망은 언제나 제일 마지막에 죽는다. 그는 이 사실을 어렸을 때 배웠고 군인으로서 직접 목격했다. - P178
방이 따뜻해졌고 이제 체인도 말랐을 테다. 불빛이 자전거 바퀴 테, 핸들, 바퀴살을 비추었다. 그는 자전거를 뒤집어서 한 손으로 페달을 천천히 돌리면서 기름 깡통의 노즐을 체인에 가져다 댔다. 기름을 칠하면서 돌아가는 체인을 보고 있으니 체인이 사슬 톱니에 완벽하게 맞는 것이, 톱니의 이가 체인에 딱 맞게 만들어진 것이 놀라웠다. 어딘가에서 어떤 남자가 자기 무게를 이용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남자는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계속 노력했고 결국 이루어냈다. 자전거에 기름을 바르자 예전에 총을 손질할 때 느꼈던 즐거움이 피어올랐다. 총신을 따라 천을 밀어 넣는 느낌, 금속의 둔탁한 번쩍임, 탄실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총알. 모든 것이 다른 무언가를 위해 만들어졌고, 그 존재 덕분에 매끄럽게 굴러갔다. - P179
그는 반지와 열쇠를 확인한 다음 페달에 발을 올리고 출발했다. 곧 그는 힘들게 페달을 밟아 언덕을 올라가면서 이제 빈둥거리며 여자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던 시절이 끝나고 있음을 인식했다. 싸늘한 느낌이 치솟았 다. 그에게는 새로운 느낌이었고, 새로운 것은 뭐든 그러하듯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 P182
마거릿 플러스크는 모자도, 고무장화도, 남자도 없었다. 긴 갈색 머리가 등 뒤로 해초처럼 느슨하게 내려왔다. 그녀는 딱 맞는 커다란 양가죽 외투를 입었고, 인간 세상을 내다볼 때는 많은 것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여자처럼 엄격한 시선이었다. 마거릿은 더나고어로 이사 왔을 때 마흔 살도 채 안 되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났다. 아이를 낳을 능력은 벌써 몇 년 전에 사라졌는데, 그녀는 항상 퀴큰 나무 숲의 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188
그녀는 불을 꺼뜨릴 만큼 오랫동안 집을 비우지도, 잠을 자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는 별이 아직 떠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떨어지는 별을 보면 만족스러웠다. 마거릿은 자연의 힘을 믿었을지 몰라도 불운을 불러온다는 행동은 열심히 피했다. 그녀는 불운을 이미 겪었으므로 이제 월요일에 절대 재를 버리지 않았고, 일꾼을 지나칠 때는 반드시 그의 일을 축복했다. 난로에 소금을 뿌리고, 침실 벽에 성녀 브리지다의 십자가를 걸고, 달의 변화를 주시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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