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사제의 발을 본다. 더러운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것은 모욕이다. 사제는 신발을 벗어 밖에 두면서 발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중국인이 등받이 없는 의자를 꺼내 온다. 그는 손이 빠르다. 유연하고 잘생겼고, 자기 집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사제는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창유리를 통해 강을 내다보면서 새삼 날카로운 질투를 느낀다. - P59
"네." 중국인이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내 문제요?" 중국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 아무 문제도 없어요." 사제가 말한다. 중국인이 웃는다. 원래 문제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그도 안다. - P59
중국인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고 있다. 그런 다음 소매를 팔꿈치까지 깔끔하게 접어 올리더니 손을 뻗어 사제를 만진다. 다른 사람과 닿은 것은 3년 만인데, 모르는 사람의 손이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럽게 느껴진다. 어째서 상처보다 부드러움이 사람을 훨씬 더 무력하게 만들까? - P60
롤러의 딸과 보낸 파편 같은 시간들이 마음을 스친다. 그녀를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녀는 자기 인식이란 말의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대화의 목적은 스스로 이미 아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모든 대화에 보이지 않는 그릇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야기란 그 그릇에 괜찮은 말을 넣고 다른 말을 꺼내 가는 기술이었다. 사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면 더없이 따스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릇은 다시 텅 빈다. 그녀는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 너머에 진짜 앎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때로 그런 그녀의 생각에 화가 났지만 그녀의 말이 틀렸음을 결코 증명 할 수 없었다. - P61
이제 중국인이 사제의 손을 주무르면서 뒤로 최대한 꺾자 사제는 손목이 틀림없이 부러질 것만 같다. 그런 다음 그의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빙빙 돌린다. 중국인이 사제의 머리 양옆에 무릎을 대고 그의 척추 맨 아래, 꼬리뼈에서부터 몸통을 지나 무언가를 끌어온다. 뭔가 딱딱한 것이 꼼짝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중국인의 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사제는 미처 마음의 준비도 되기 전에 안에서 무언가가 접히는 것을 느낀다. 해안에서 바닷물이 접히면서 또 다른 파도를 만들 때 같다. 그의 입에서 파도가 부서진다. 그녀의 이름이 끔찍한 비명처럼 터져 나오고, 다 끝난다. - P62
사제가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건 뭐죠?" "오래됐어요." 중국인이 말한다. "비어 있네요."사제가 웃는다. 중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비었어요." 사제가 말한다. "가득 차 있지 않다고요." "네." 중국인이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 P63
그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건조하고 기대로 가득 찬 봄이 왔다. 오리나무가 싹을 틔우면서 허연 가지가 놋빛으로 변한다. 이제 모든 것이 더 선명해 보인다. 울타리 기둥 너머에서 밤이 단단히 준비한다. 갈퀴는 무척 사랑받고 닳아서 반짝거린다. 하느님은 어디 있지? 그가 물었고, 오늘 밤 하느님이 대답하고 있다. 사방에서 야생 커런트 덤불이 풍기는 짙은 냄새가 뚜렷하다. 양 한 마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른다. 머리 위에서 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하느님은 자연이다. - P64
"그건 그렇고, 암말에 편자를 달고 오는 길이야." "말은 괜찮았어요?" "난리였지." 레이든이 말한다. "여기 브래디가 안 도와줬으면 아직도 달고 있었을걸." "젊은 애들이나 하는 일이야." 맥필립스가 말한다. "나도 팔팔할 때는 편자를 직접 씌웠지." "파인트 세 잔만 마시면 안 해본 일이 없지." 노리스가 말한다. "두 잔 마시면 못 할 일이 없고!" 레이든이 한술 더 뜨며 말한다. - P71
이제 뉴스가 끝나고 숀이 라디오를 끈다. 이 침묵은 모든 침묵과 마찬가지다. 다들 조용해져서 좋아하면서도 침묵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 뻔해서 좋아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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