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교구에서 온 젊은 여자가 바텐더를 찾아서 바를 향해 몸을 숙인다. 그녀의 옆에서 이발사가 자기 잔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잔이 반쯤 빈 걸까요, 반쯤 찬 걸까요, 신부님?"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사제가 말한다. "글쎄요, 뭘 마시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여자가 말한다. "둘 다겠죠. 둘 중 하나만일 수는 없잖아요." 이발사가 얼굴을 찌푸리다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다. "여자들이란 참."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여자들은 항상 답을 가지고 있다니까요." - P37
"무슨 일이든 저절로 해결되는 법이지요." 사제가 위로한다. "그런 일도 있죠."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광을 낸 커다란 구두 끝으로 의자를 툭툭 치며 말한다. "그저 물러서서 마음대로 하게 놔둬야 해요. 실수하게 내버려둬야 하죠. 그게 힘듭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일을 당할 뿐이에요." - P39
사제가 문을 나설 때 웃음소리가 들린다. 한때, 별로 오래되지 않은 예전에는 사제에게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을 텐데. 그는 바에 가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결혼식은 힘들다. 사방에 술이 넘치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지만 그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한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딸을 빼앗긴다. 한 여자는 아들이 별것도 아닌 여자에게 자신을 내던지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반쯤 그렇게 생각한다. 비용이 들고 감정은 오가고 돌이킬 수는 없다. 공개적으로 서약하면 사람들은 항상 운다. - P40
"다들 잘 알지만 흰 옷이 얼룩지기 쉬운 법이지." - P45
신랑이 종이를 펴고 장인과 비슷한 인사말로 다시 한번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신부는 연설을 늘어놓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용히 앉아 있다. 웨이트리스가 샴페인을 들고 오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신부가 와인 잔 자루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자 사제는 무언가가 떠오른다. 선명하게 되살아난 기억 때문에 그는 혼자 있고 싶어진다. - P49
사제에게 마이크가 다시 넘어온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후 감사 기도를 드리지만 한마디도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은 기도를 드려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 하느님은 어디 있지? 그가 물었다. 하느님이 무엇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을 몰라도 상관없다.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지만–바로 이것이 이상한 점이다–그는 하느님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바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의 계시뿐이다. 저녁이 되어 가정부가 돌아간 뒤 창가의 커튼을 꼼꼼하게 치고 나서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사제가 되는 방법을 보여달라고 기도를 드릴 때도 있다. - P49
사제가 댄스플로어를 가로지른다. 신부가 양손을 내밀고 서 있다. 그가 신부의 손에 진주를 내려놓자 그녀가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눈물이 고여 있지만 그녀는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눈을 깜빡여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기만 하면 사제는 그녀의 손을 잡고 여기서 달아나리라. 적어도 사제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그녀가 한 때 바라던 일이었지만 세상에서 두 사람이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바라는 일은 거의 없다. 때로는 바로 그 점이 인간으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 - P52
한때 집 한 채가 서 있던 곳에서 길이 끝난다. 담쟁이덩굴이 박공을 온통 뒤덮었다. 오리나무가 자라는 습지에 도착하 자물 쪽에서 당황한 듯 퍼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야생 오리 떼가 날아오른다. 그 바람에 밑으로 늘어진 꽃이삭들이 떨린다. 사제가 가만히 서서 백로를 찾아 하늘을 바라본다. 여기에 와서 못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갑자기 백로가 나타나 하늘을 향해 평온한 곡선을 그리며 느린 날갯짓으로 날아간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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