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아무리 애원해도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호의를 보일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당신의 선의와 연민을 갈구하는데도? 내 말을 믿어라,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 사막 같은 산맥과 음침한 빙하들이 내 안식처다. 수많은 날들을 여기서 방황했다. 얼음 동굴도 나는 두렵지 않다. 그러니 여기가 인간들이 불평하지 않는 내 유일한 거주지다. 이 황량한 하늘을 나는 반가이 맞는다. 저 하늘은 당신의 동포들보다 내게 훨씬 더 친절했다. 무수한 인류가 내 존재를 안다면, 당신처럼 무장을 하고 나를 파멸시키려 들 것이다. 그러니 나를 혐오하는 그들을 어찌 내가 증 오하지 않겠는가? 원수들을 봐줄 생각은 없다. 내가 불행하니 그들도 내 불행을 함께 느껴야만 한다. 하지만 당신은 내 불행을 보상해주고 악행에서 구해줄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내 죄는 점점 더 커져서, 당신과 당신 가족뿐 아니라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마저도 그 분노 속에 집어삼켜버릴 것이다. 동정심을 갖고 날 경멸하지 말라.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저버리든 불쌍하게 여기든 하라. 그때 는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내 말을 들어라. 죄지은 자라 해도, 아무리 잔인한 죄인이라 해도, 인간의 법은 선고를 내리기 전 변론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가. 내 말을 들어라, 프랑켄슈타인. 당신은 내게 살인죄를 씌우고, 양심에 거리낌도 없이 피조물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 오, 인간의 영원한 정의를 찬양할지어다! 하지만 살려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 말을 들어달라. 그다음에,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파괴하도록 하라." - P133
그들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이와 처녀는 따로 떨어져서 흐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이 불행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심히 흔들렸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불행하다면, 나처럼 불완전하고 고독한 존재가 비참하다는 게 조금은 덜 이상했다. 그러나 어째서 이 귀한 사람들이 불행한 걸까? 쾌적한 집(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이 있고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있는데. 싸늘할 때 몸을 따뜻하게 덥혀줄 불도 있고, 배가 고플 때 먹을 맛있는 음식도 있는데. 훌륭한 옷을 입고 있고, 서로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날마다 애정과 친절로 가득한 표정을 서로 나누지 않는가. 그들의 눈물은 무슨 뜻일까? 정말로 고통을 표현하는 걸까? 처음에 나는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꾸준한 관심과 시간이 처음에 수수께끼처럼 보이던 모습들을 설명해주었다. - P147
점차 나는 훨씬 더 의미심장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들이 또박또박 끊어지는 소리를 사용해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소통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끔 그들이 하는 말이 듣는 사람의 마음과 얼굴에 쾌감이나 고통, 미소나 슬픔을 떠오르게 할 때가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이것은 진정 신과 같은 과학이었기에 나도 터득하고 싶다는 열망이 타올 랐다. 그러나 시도를 할 때마다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사람들의 발음 빨랐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말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명백한 연관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들이 지칭하는 대상의 미스터리를 풀어낼 단서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청난 노력을 쏟으며 달이 몇 번 공전할 때까지 축사에 머문 결과, 나는 이야기에 가장 친숙하게 등 장하는 물건들의 이름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 이 각각의 소리에 일치하는 관념들을 배우고 발음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이해하거나 적용하지는 못해도, 내가 분간할 줄 아는 단어들은 또 몇 개 더 있었다. ‘좋은, 사랑하는, 불행한 같은 말들이었다. 겨울은 이렇게 보냈다. - P148
처음에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해 몹시 어리둥절했지만, 차츰 나는 그가 말을 할 때와 같은 소리를 아주 많이 낸다는 걸 알았다. 그리하여 종이 위에 쓰여 있는 말 기호들을 그가 이해하는 거라 추측한 나는, 이 기호들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올랐다. 그러나 기호가 지칭하는 소리들조차 알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나는 이 과학에서 두드러지게 발전했지만 아직 대화를 알아 들을 정도는 되지 못했다. 온 정신을 집중해 노력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아무리 오두막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도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기 전까지는 그런 시도를 해서는 안 되었다. 언어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생김새의 기형을 사람들이 눈감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와 대조적인 외모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의 기형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 P150
나는 오두막 사람들의 완벽한 외모에 찬탄했다. 그 우아함, 아름다움, 그리고 섬세한 얼굴. 하지만 투명한 물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는 얼마나 겁에 질렸었던지! 처음에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서, 물에 비친 상이 진짜로 나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끔찍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나자, 쓰라리게 아픈 좌절과 울분의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 이 참혹한 기형이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지 온전히 알지 못했다. - P151
봄철의 상쾌한 소나기와 온화한 따스함에 땅의 면모가 크게 변했다.이런 변화가 있기 전에는 동굴에 처박혀 있는 것 같던 사람들이 흩어져 나와 다양한 농경기술로 일하기 시작했다. 새들이 더 명랑한 곡조로 노래했고, 나무에 새싹이 트기 시작했다. 행복하고 행복한 땅!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량하고 습하고 건강하지 못했던 그곳이 이제는 신 들의 거주지로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의 매혹적인 풍경에 내 정신이 고양되었다. 과거는 기억에서 지워지고, 현재는 고요했으며, 미래는 희망의 밝은 햇살과 환희의 기대로 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 P153
이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이상한 감정이 밀어닥쳤다.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력하고 그토록 덕스럽고 훌륭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천박하단 말인가? 인간은 어떤 때는 온갖 사악한 원칙들을 이어받은 후계자에 불과해 보이다가, 또 어떤 때는 고귀하고 신성한 특질을 한 몸에 체현한 듯했다. 위대하고 덕망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건 분별력을 갖춘 존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 같았다. 기록에 드러난 무수한 사람들처럼 천박하고 사악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저열한 타락 같았다. 이런 상황에 빠지는 건 심지어 눈 먼 두더지나 무해한 벌레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한 인간이 친구를 살해하려 들 수 있는지, 심지어 법과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건지, 아주 오랫동안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악행과 유혈사태의 세세한 내용을 듣고 나니, 경이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혐오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 P159
지식의 본질이란 얼마나 희한한 것인가! 일단 마음을 사로잡으면, 마치 바위에 이끼가 끼듯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가끔은 생각과 감정을 모두 떨쳐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고통의 감각을 초월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은 내가 두려워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미덕과 선한 감정을 우러러보고, 오두막집 식구들의 다정한 태도와 쾌활한 성격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몰래 홈쳐보는 것 외에는 그들과 교류할 길이 막혀 있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충족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아가타의 친절한 말, 매력적인 아라비아 여인의 생기 넘치는 미소는 나를 위한 게 아니었다. 노인의 온화한 훈계와 사랑받는 펠릭스의 열띤 대화는 나를 위한 게 아니었다. 비참하고 불행한 괴물! - P160
축사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의 실험실에서 가져온 옷의 주머니에서 종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제 그 기호를 해독할 수 있었기에 열심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건 나를 창조하기 전 넉 달 동안 당신이 기록한 일지였다. 당신은 이 서류에 작업의 진척 상황을 세밀히 기록해놓았다. 당신도 틀림없이 이 일지를 기억하겠지. 바로 여기 있다. 내 저주받은 기원에 대해 참조할 사항이 모조리 여기 적혀 있다. 내 탄생까지 이어지는 혐오스러운 정황들이 모두 세세하게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불쾌하고 역겨운 이 몸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언어는 당신 자신의 공포를 생생하게 표현할 뿐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읽어가면서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내가 생명을 얻은 그날을 증오한다!‘ 나는 괴로움에 울부짖었다. ‘저주받은 창조자! 어째서 자기마저 역겨워 등을 돌릴 흉악한 괴물을 빚어냈단 말인가? 신은 연민을 갖고 자신을 본떠 인간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내 모습은 당신의 더러운 투영이고, 닮았기 때문에 더욱 끔찍스럽다. 사탄에게는 그를 숭배하고 격려해줄 동료 악마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미움을 받는다.‘ - P174
그사이 오두막에는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그들의 감정은 잔잔하고 평화로웠으나, 내 감정은 날마다 더욱 격해지기만 했다. 지식이 쌓일수록 내가 얼마나 비참한 추방자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물론 희망은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나 달빛에 비치는 내 그림자를 볼 때면, 덧없는 허상이고 변덕스러운 그늘일 뿐인데도, 희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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