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공으로 흥분한 가운데 태풍처럼 나를 몰아친 그 다채로운 감정들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으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야말로 이상적인 목표였다. 내가 최초로 돌파해 어두운 세상에 폭포수처럼 빛이 흘러들게 만들었기에. 새로운 종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 헤아릴 수도 없는 행복하고 탁월한 본성들이 내 덕에 탄생하리라. 나만큼 자식의 감사를 받아 마땅한 아버지는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이런 생각들을 따라가던 나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지금은 불가능해도) 시간이 지나면 겉보기에는 죽음으로 부패된 육신에도 새 생명을 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66
완벽한 인간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정념이나 찰나의 욕망에 휘둘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 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 좀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 P68
살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우연들도 사람의 감정만큼 변덕스럽지는 않다. 나는 생명 없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열망으로 거의 2년 가까운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 이 목적을 위해 휴식도 건강도 다 포기했다.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으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하지만 다 끝나고 난 지금, 아름다웠던 꿈은 사라지고 숨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 P72
아! 산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 무시무시한 얼굴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미라가 다시 살아나 움직인다 해도 그 괴물처럼 참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미완의 상태에서 괴물을 찬찬히 뜯어본 적은 있다. 그때도 흉물이었다. 하지만 그 근육과 관절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단테도 상상 못했을 괴물이 되어버렸다. - P73
마치 고독한 길을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걷는 사람처럼, 한 번 뒤돌아보고는 다시 걷고, 영영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악마가 바로 뒤에서 그를 따라 걷고 있음을 알기에.
콜리지의 시 「늙은 수부의 노래」 중에서. - P74
함께 걸어가는 길에 클레르발은 내 기운을 북돋워주려고 애썼다. 흔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진심이 배어나는 동정심으로 달래주었다."불쌍한 윌리엄!" 그가 말했다. "그 어여쁜 아이가. 이제는 천사가 된 어머니와 함께 잠들어 있겠구나. 친구들은 슬퍼하고 흐느껴 울겠지만 그애는 이제 평온하게 쉬고 있어. 암살자의 손길도 느끼지 못할 테고, 그 보드 라운 몸을 뗏장이 덮고 있으니 아픔도 모를 테지. 우리는 이제 더이상 그애를 불쌍하게 여겨서는 안 돼.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장 괴로운 법이야. 시간밖에는 아무 위로가 없으니까. 죽음은 악이 아니라든가, 인간의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영원한 부재 앞에서도 절망을 극복한다는 식의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지. 카토마저도 동생의 시신 앞에서는 흐느꼈으니까." - P95
여정은 몹시 우울했다. 처음에는 슬픔에 빠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어서 빨리 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고향이 가까워지자 발길을 늦추게 되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물밀듯 밀어닥치는 착잡한 감정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익숙했으나 6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모든 게 얼마나 변했을까? 확실한 건 급작스럽고 황막한 변화 한 가지가 일어났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천 가지 작은 상황들이 서서히 또다른 변화들을 일으켰으리라. 훨씬 조용히 진 행된 변화들이겠지만 결정적 의미가 덜한 건 아니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뭐라 형용할 수도 없는 수천 가지 이름 없는 죄악 때문에 온몸이 떨렸다. - P95
길은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다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좁아졌다. 쥐라의 검은 산등성이와 몽블랑의 빛나는 정상이 전보다 더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다정한 산들아! 내 아름다운 호수야! 방랑자를 어찌 이렇게 반가이 맞아주는 거냐? 봉우리는 선명하고, 하늘과 호수는 파랗고 잔잔하구나. 이는 평화의 전조일까, 내 불행을 조롱하기 위한 걸까?"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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