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펠 수사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 중 딱히 이상한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 무엇도 잊지 않았고, 그 무엇도 후회하지 않았다. 또한 전투와 모험을 통해 맛본 기쁨과, 지금 이 정적의 한복판에서 느끼는 만족감 사이에서 어떠한 갈등도 느끼지 않았다. 향신료가 가득한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 그대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악행으로 생활에 풍미를 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고, 수도원이라는 조용한 배에 오른 지금은 다시 정적을 즐기고 있는 셈이었다.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젊은 수사들은, 오랜 세월 모험을 즐기며 살아 왔다면 여자들도 많이 만났을 테고 그 교제들이 전부 기사도적이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사람이 이런 수도원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서로 속삭였을 것이다. - P13

여자들에 관해서라면 그들의 생각이 옳았다. 10년이 넘도록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같은 지방의 장인, 그러니까 절대로 전쟁터로 달아날 염려가 없는 견실한 남자와 결혼해버린 리힐디스를 제외하고도, 그에게는 여자들과의 추억이 많았다. 여러 나라에서 그는 서로에게 아무 해가 없이 오직 즐거움만을 주는 교제를 만끽했다. […] 가벼운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었고, 헤어진 뒤에도 나쁜 감정 같은 건 남지 않았다.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그 추억들이 고적한 은둔 생활과 균형을 이루어 지금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게 영 위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그러한 경험으로 얻은 인내심과 통찰력 덕분에, 그에게는 단조로운 은퇴 생활 에 불과한 베네딕토회의 전통적 직무를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여 살아가는 폐쇄적이고 소박한 영혼들과도 그럭저럭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세상 온갖 풍상을 겪은 사람으로서는 허브밭에서 말년을 보내는 것도 적잖이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일마저 없이 무료하게 살아야 한다면 지금처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으리라. - P13

캐드펠 수사는 행렬의 가장 끝자락에 섞여 소리 없이 자신의 구석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빛도 거의 들지 않고, 줄지어 늘어선 석조 기둥으로 반쯤 가려진 맨 뒷줄 자리였다. 캐드펠은 번거로운 양피지 업무를 맡고 있지 않은 터라 수도원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행사에서 낭독자나 발언자로 지명될 염려가 거의 없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그는 평의회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그는 어둠에 싸인 자신의 구석 자리에서 똑바로 앉은 자세로 잠자는 법을 터득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스스로에게 경고를 내리는 육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경고를 받는 즉시 잠에서 깨어나 시치미를 뚝 떼고 조용히 앉아 있을 줄도 알았다. 그뿐 아니라 졸고 있을 때 던져진 질문에 대해서도 꼭 들어 맞는 답변을 할 수도 있었다. - P21

캐드펠이 느끼기에 콜룸바누스 수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만족할 만큼 일을 하지 못하여 그 결핍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쯤은 의식적으로 또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안타깝고 견책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약간의 여지 또한 남겨두었다. 이곳에서 만난 형제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한 터였다. 존 수사라면 또 모를까. 그러나 수도원 안에서건 밖에서건 존 수사처럼 명랑하고 둔감하며 외향적인 사람은 희귀한 법이었다. - P26

"저도 웨일스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 세번강 위의 다리를 건너 사라져가는 것을 눈으로 좇으며 존 수사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는 계시 같은 건 영영 못 볼 거예요. 이런 일에는 제롬 형제가 적격이지
요."
"형제여, 갈수록 점점 더 신앙인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구먼." 캐드펠 수사는 점잖게 타일렀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전 누구 못지않게 그 소녀의 정결함을 믿고,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을 믿는다고요. 성인들께서 우리를 돕고 축복할 능력을 가지셨다는 거야 당연히 알죠. 그분들이 선의를 가지셨다는 것도 믿고요. 하지만 그 꿈을 꾼 사람이 하필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충복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성녀가 아니라 부수도원장의 신성함을 믿느냐는 질문이나 마찬가지예요. 어쨌든 성녀께서 그런 호의를 베푸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도대체 왜 우리가 그분의 무덤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건지 전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건 교회가 아니라, 납골당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잖아요. 수사님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죠?" - P34

존 수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 온순한 하얀 양이 고해성사를 하다가도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치는가 하면 철야 기도 중에 갑자기 황홀경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야 다들 알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니 홀리웰에서 갑자기 얼음처럼 차디찬 샘물이 몸에 닿은 순간 화들짝 놀라 정신이 되돌아왔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이곳 연못에다 그 형제를 처박았더라도 같은 결과를 얻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 형제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얘기를 믿었을 테니 모두 그 성녀 덕분이라고 생각하겠죠. 그 형제가 어디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길 사람인가요! 절대 아니고말고요. 전 콜룸바누스 형제가 그 음모의 일부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형제는 영광스럽게 은총을 입증할 도구로 이용되었을 뿐이죠. 수사님도 콜룸바누스 형제의 밤샘 간호를 명받은 사람이 제롬 수사였다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계시를 받는 것은 딱 한 사람만으로 충분했어요. 그가 더없이 적합한 사람이라면 말이죠." 그가 여린 녹색 이파리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비비자 아침 대기 속으로 짙은 허브 향기가 퍼졌다. "아마 부수도원장이 웨일스로 갈 때 데려갈 사람들도 더없이 적합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는 씁쓸한 어조로 단언했다. "두고 보시면 아시게 될 거예요."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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