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그곳에서는 햄스터 두 마리가 쳇바퀴를 굴리고 있다. 그가 불을 켜자 현기증 나는 빛이 비친다. 알전구 불빛에 벽마다 사진이 붙어 있는 게 보인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확대된 사진들. 하나씩 하나씩, 열성을 기울여 제 새끼를 먹어치우는, 거대하게 확대된 햄스터들. 외계인처 럼 생긴 얼굴을 가진 조막만 하고 불그스레한 살덩이들 — 자기 자식들 — 에 박혀 있는 설치류의 작고 귀여운 이빨. 내가 항상 보고 싶었던 사진들이 지금 내 눈 앞에 있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자기가 낳은 존재들을 먹는 존재. 제 어린 자식들을 먹고 사는 엄마. 실수를 바로잡는 자연의 모습.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내가 미소 짓는다. 그도 미소 짓는다. - P85

그들은 이제 오지 않는다. 수영장은 낙엽과 곤충 사체들로 덮여 있고 나는 그 가운데에 떠서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있다. 가끔 나한테는 햇빛조차 비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거지 같은 마을의 강렬한 태양, 모든 사람들에게 구릿빛 피부와 행복한 얼굴을 선사하는 그 태양이 나만 비껴간다. 나는 희끄무레하기만 하고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자리 없이 벗어나 있다. - P93

벽에다 공을 던지고 있다 보면 나는 뭐에 씌기라도 한 것처럼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공을 치고 받았고, 그럴 때 나는 외삼촌의 왜건 엔진 소리가 들려오는 상상을 한다. 라이카가 짖는 소리, 마리아 테레사의 째지는 웃음소리, 훌리오가 바닥에 축구공을 튀기는 소리를 상상하고 엄마가 자기 오빠를 보고 오빠가 와서 너무 기뻐,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는 정말로 기뻐 보인다. 몇 달 동안이나 다른 것, 그러니까 기쁨과는 거리가 먼 것들에만 빠져 있던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진짜 기쁜 표정. 엄마는 사랑 노래를 흥얼거리며 레모네이드를 만들러 부엌으로 가고, 목이 긴 유리컵에 생크림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두 덩이를 얹고 그 위에 웨이퍼 스틱을 꽂아 내온다. 외삼촌 먼저야. 외삼촌, 외삼촌, 외삼촌 거야. 가만둬, 손대지 말라니까, 하면서 내 손을 탁 친다. - P93

사촌들이 그립다. 나는 그들이 이곳에 있을 때의 그 소년이 되고 싶다.
울음이 터졌다.
이번 여름은, 그리고 아마도 분명 앞으로 올 내 인생의 모든 여름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이미 똥통에 처박혀버리고 만 거야.
갑자기 이 집이 무서워졌다. 지금은 없는 이 집의 모든 남자들. 할아버지, 아빠, 외삼촌, 훌리오. 나도 여기 있기 싫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다른 무엇이 될 순 없는 걸까? 내가 있고 싶은 곳은 어디에도 없지만 — 과거로 갈 수는 있나? — 그래도 여기 있고 싶지는 않다. - P98

나는 엄마를 위해 샐러드를 조금 싸가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천장에 달린 선풍기 아래에 큰대자로 누워 있었는데 아직 샤워한 물기가 벗은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엄마의 몸은 내 몸과 같이 생크림처럼 희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약한 빛이 엄마의 몸을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익사체 같았다. 누군가 막 수영장에서 건져 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살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에.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눕혀놓은 것처럼, 다리가 벌어진 자세로.
엄마는 죽었고 그러면 나는 떠날 수 있다. 그렇지. 뭐든 작은 배낭에 쑤셔 넣고 마리아 테레사와 훌리오를 찾아 떠날 것이다. 엄마는 죽었다. 물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나는 블라인드를 치지 않았다. - P98

"믿음을 가지세요, 여사님. 이 그리스도상은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더니 돈을 달라고, 동전이라도 몇 개 달라고 했다. 왜 아주머니는 그리스도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기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라면 동전이 가득할 텐데. 버스비가 없어서 가끔은 먼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우리랑은 달리. - P105

교회 안으로 들어갔더니 […] 또 사진과 쪽지와 지폐와 그림들도 잔뜩 매달려 있었다. 쪽지 중 하나에는 "도와주세요 주님, 저 이제 아옵 쌀바께 안 댔는데 암이래요"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이 중 어떤 게 내 동생인지 그리스도는 어떻게 알아요?"
"아주 똑똑하시거든." - P106

그곳을 떠나기 전 엄마는 로스안데스 케첩 병을 꺼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채웠다.
"좋은 물이야." 엄마가 말했다. "그리스도의 물, 성수야."
내게도 한 모금 마시라고 주었는데, 성스러운 맛이 나기는커녕 그냥 케첩 맛에 녹물 맛이 조금 나서 나는 그냥 케첩 물 아닌가, 월말이 되어 케첩이 거의 다 떨어졌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케첩을 맨밥 위에 뿌려 먹던 그 맛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게 기적일 수는 없었다. 기적이라면 밀크캐러멜 맛이 나거나 더블버거 맛이 나야 했다. 가난의 맛이 아니라.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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