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사랑이야, 라고 그가 설명했고 나는 네, 라고 말했다. 남자들에게는 항상 네, 라고 말했으니까.
나는 열두 살, 그는 열세 살이었다. 둘 중 누구든 사랑이 뭔지 알았겠는가. - P76

가끔은 아빠도 우리랑 함께 저녁을 먹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식당은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변했다.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 속에서 미친 사람들처럼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켰고 엄마는 밥을 태우고 수프를 흘리고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리곤 해서, 우리 집이 아니라 꼭 정신병원에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날 밤 나는 햄스터 이야기를 했고 다른 사건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오빠들은 역겹다고, 밥 먹을 때 그런 더러운 얘기 하지 말라고 내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엄마는 부엌에 있었다. 너겟 더 먹을래, 퓌레도 더 먹겠니, 하기에 오빠들은 네, 라고 대답했고 나도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눈물과 함께 음식을 삼켜야 했는데,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는 목이 막혀 죽을 것 같아도 밥은 먹어야 했고 아무도 구해주지 않아도 밥은 먹어야 했으며 멍이 들어도, 혹이 나도, 아니 죽더라도 밥은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 P77

바네사와 비올레타의 아빠 이름은 토마스였고 사람들은 토마스 씨라고 불렀는데, 좀 무서웠다. […] 그가 집에 오면 우리는 거의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춰야 했고 집 안의 공기에는 마치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그런 것처럼 찌릿하고 메케한 기운이 감돌았으며, 그럴 때 우리의 놀이는 병적으로 변했다. […] 그럴 때 나는 천천히 일어나 유령처럼 조용히 계단을 내려간 뒤 숨이 턱 막힌 채 문을 연다. 공기가 더 나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 것인 공기가 있는 우리 집에 가려는 것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는 결국 자신을 감싸는 공기로 숨을 쉰다. 자신의 허파가 이유도 모르면서 열렬히 원하는 그 공기. 가엾어라, 멍청한 허파여. 내 육신의 살덩어리. 내 공기의 공기. 내 부모의 딸. - P78

내 쌍둥이 친구의 엄마는 걔들 아빠와는 달리 키가 작았고, 그게 다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특별히 기억 나는 다른 특징이 없다. 그냥 원피스를 입고 걸어다니는 얼룩 같았다. 이름이 마르가리타였던가 로사였던가, 그런 우아한 느낌이 살짝 있는, 꽃 이름 같은 이름. - P79

내가 자기 집에 와 있다는 걸 그가 알고 있었다는 건 나도 안다. 내가 복도를 걷고 있으면 조금 열린 문틈으로 내 모습을 쫓는 검은 눈동자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가끔 그의 방 옆을 지날 때 나는 내 아랫배에서 어떤 야수 같은 열기가 느껴져 어지러웠는데 그 느낌은 분명 내가 아플 때 느끼는 어지러움과는 달랐다. 햄스터가 계속해서 새끼를 낳고 또 제 새끼를 먹어치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좀 흥분했다. 그 일, 그러니까 설치류가 벌이는 그 카니발리즘은 밤에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쌍둥이들에 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지만, 나도 아빠의 카메라를 가지고 올 생각이 없었고 그 애들도 자기 아빠의 카메라에 손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 손을 불태워버릴 거야. 그래서 그 장면을 보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해소되지 않았다. - P79

내가 카펫 위에 앉아서 그의 여동생들과 놀고 있었던 것은 그를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 그의 헛기침 소리라도 듣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아침에 등교할 때면 종종 동시에 집을 나설 때가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얼굴이 달아 오르는 것을, 심장이 타악기 마트라카처럼 요란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내 상태를 다 알아채고 말 거라 생각했으나 사실 그 시간에는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시간에도. 나의 오빠들이 밤에 그 악마같이 생긴 인형을 가지고 나를 놀래키려고 할 때 나를 쳐다보는 것도 포함한다면, 그래, 그때만큼은 누군가 나를 보고 있기는 했다. - P80

그의 아빠가 가족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 나의 아빠는 내가 이전처럼 자주 그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안 좋게 보았다. 왜냐하면 그 집은 머리 없는 집이니까. 꼭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가장이 없는 집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는데 나는 머리 없는 집이라는 말만 생각이 난 다. 머리가 없는 닭처럼, 미쳐 날뛰는. 그 집에 못 가게 된 것이 상처로 남진 않았다. - P82

아마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같은데, 어느 날부터 그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졸업했고, 다시는 아무도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는 그에 대해 알고 싶어 죽을 것 같았으나,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그의 이름의 마지막 음절을 발음 하게 되면 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녹아 없어져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오빠들 역시 졸업했고, 그렇게 꼬마였던 사람들은 이제 그냥 사람이 되었다. 상처는 그대로였지만. - P83

나도 역시 졸업했고 대학에 진학했고 또 학업을 마쳤고 나는 계속해서 남자들에게는 네, 라고 말했고 이 집 저 집에서 벽에 던져져 깨진 값싼 유리컵처럼 나도 그렇게 깨지곤 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성장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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