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일상이 이상한 양상을 띠었다. 전날 밤보다 더 피곤한 아침을 맞이할 때도 있었다. 앙토니는 점점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주말이면 더 심해서 엄마의 분노를 샀다. 농담을 건네는 친구들에게 버럭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일 초도 쉬지 않고 몸을 부딪쳐 일부러 아픔을 느끼고, 벽 속에 처박히고 싶은 충동이 찾아왔다. 그럴 때면 워크맨을 귀에 꽂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 똑같은 슬픈 노래를 스무 번도 넘게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가 TV로 「베벌리힐스」를 보고 있자면 멜랑콜리가 정점을 찍었다. 다른 세상, 캘리포니아라는 지역, 그 곳 사람들은 여기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앙토니가 가진 것은 여드름, 구멍 난 운동화, 부실한 오른쪽 눈이 다였다. 그의 생활을 침범하는 부모도. 물론 부모의 명령에서 교묘히 빠져나가며 그 권위에 끈질기게 도전했지만, 앙토니가 원하는 삶은 여전히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아버지처럼 살다가 아버지처럼 인생을 끝낼 수는 없었다. 술에 취해 하루의 절반을 TV 뉴스 앞에서 투덜거리거나 무슨 말에도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여자와 으르렁거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 P212
"혹시 나랑 사귈래?" 스테프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사뭇 진지해 보이는 소년 앞에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소년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풍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집스럽고 잘생긴 아이였다. 보드카의 효력인지 스테파니의 눈에 소년은 그다지 작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옆모습을 보니 소년에 대한 선입견이 점점 사라지고 정면에서는 도드라져 보였던 부실함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년은 속눈썹이 길었고,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는 검은색이었다. 소녀는 소년을 무시하려는 마음을 잊었다. 관찰당한다는 느낌에 소년이 소녀를 돌아보자, 반쯤 감긴 오른쪽 눈이 다시 드러났다. 하지만 소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미소를 지었다. - P220
"데려다줄까?" 스테파니는 도움닫기라도 하듯 팔을 살짝 뒤로 휘둘렀다가 빈 술병을 마을 쪽으로 멀리 던졌다. 술병은 탄도 미사일처럼 아름답고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소년과 소녀는 술 병이 마른 잎사귀의 바스락거림과 함께 10여 미터 아래에 떨어질 때까지 눈으로 좇았다. "아니야, 됐어." 스테파니가 말했다. 소녀가 떠난 뒤 양토니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울고 싶어졌다. - P222
그녀의 피부는 서서히 복잡한 표층이, 추억이 되었다. 변화는 매일매일 들여다본다고 감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변화와 주름은 어느 날 아침 문득 눈에 띄었고, 검붉은 소정맥이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이 자기만의 은밀한 생애를 누리며 느린 반발을 일으키듯이. 또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엘렌도 계절마다 다이어트를 했다. 그건 그녀와 그녀의 몸 사이에 맺어진 야릇한 협약이었다. 다이어트는 지난 시절로 돌아가려는 경제학을 허락하는 합법적인 유통 수단이었으며, 그 속에서 활력과 고통을, 주름과 공허를, 충만함과 절제를 맞교환했다. 요컨대 엘렌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 P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