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입구를 청소한 사람이 누구지?" 중년의 교수가 나오자 아이가 작은 꽃 두 송이를 주었다. "누가 마당과 내 숙사 입구를 청소했나?" 또 다른 교수가 나오자 아이가 작은 꽃 세 송이를 주었다. "대문에 축하 대련을 써 붙인 사람은?" 예순여덟 살의 언어학자가 나섰다. 소년같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 앞으로 나간 그는 고개를 수그리며 굽실거리는 한편 머리를 돌려 주변 동료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모두들 웃음을 띤 채 선의의 격려와 박수까지 보내는 게 아닌가. 아이가 이번에는 작은 꽃 두세 송이 대신 어린애 손바닥만 한, 작은 꽃 열 송이에 해당하는 중간 꽃 두 송이를 주었다. 중간 꽃을 받을 때 언어학자의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지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등 뒤로 다시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지더니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 P150
음악을 뒤따르게 하면서 제2열 3숙사에 도착하자 아이가 입구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베려고 애쓸 필요 없다. 아무래도 손쓰기 어려울 테니까. 다른 사람들과 제철하러 황허 강변으로 갈 필요도 없다. 생각해보니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개조받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전부 음악이 대신 해야겠어. 어쨌든 두 사람은 다정한 한 쌍이니까. 당신이 안 가도 음악은 가야 해. 음악이 가면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해야겠지. 당신 일은 전부 음악이 대신할 거다." 아이가 말을 마친 뒤 뒤돌아서 갔다. 말이 방 안에 인질처럼 남았다. 대문 입구에 도착한 아이는 하늘색과 대열을 살펴본 뒤 다시 호루라기를 불고 손짓하며 대열을 북쪽으로 출발시켰다. 과연 99구의 동쪽 담 모퉁이를 돌 때 학자가 뒤쪽에서 따라왔다. 다리가 부러진 뒤에도 주인을 쫓아가는 불쌍하고 불쌍한 개처럼 절뚝거리며. - P161
태양이 동쪽 대지의 지평선에 금물처럼 엉겨 붙어 하늘과 땅을 하나로 찰싹 붙여주었다. 강가에서는 서릿 빛처럼 차가운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혹은 몇 번뿐이었던 새 울음이 동쪽 하늘에서 눈부신 불꽃을 불러낸 뒤에는 더 이상 성기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울렸다. 태양도 빛이 한데 어우러졌다. 평원의 모래사장도 하얀 소금이 한데 어우러졌다. 사람들의 땀도 얼굴에서, 몸에서 한데 어우러졌다. - P162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들이 말 떼가 승리를 향해 내달리는 것처럼 뛰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웃음과 환호성이 파도처럼 강가를 휩쓸어 황허 강변의 천년 적막을 깼다. 황허 강변을 들끓게 만들었다. 젊은 강사가 제일 먼저 도착해 아이와 실험이 쌓아놓은 가마 위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며 와 하고 소리쳤다. 작렬하는 선홍빛이 석양을 봉화대 저편에 깔린 먼지처럼 흐릿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제일 뒤처진 학자가 절뚝거리며 앞쪽으로 걸어가 자신의 범포 가방을 줍고는 달려가는 사람들과 구호, 환호성, 그리고 붉은 깃발을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꼭 깨무는 그의 얼굴로 소금웅덩이에 겨울 안개가 깔리듯 짙은 망연함이 깔렸다. - P166
아이가 그 커다란 16절지 책, 벽돌처럼 두껍고 검붉은 표지의 딱딱한 양장본을 받았다. 표지에 ‘자본론‘이란 제목과 아주 긴 저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공문에서 가장 추천하며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명시한 책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밥그릇만큼이나 그 책이 익숙했다. 하지만 한 번도 다른 사람이 그의 밥그릇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책을 들추자 스무 장쯤 뒤에 과연 가로 2촌, 세로 3촌, 깊이 1촌 정도 되는 구멍이 있었다. 구멍의 네 변이 작은 『성경』에 꼭 들어맞았다. 『성경』은 표지 없이 속지만 있었다. 글씨가 파리똥만큼 작은 게 꼭 열을 지어 자석으로 달려드는 검은색 강모래 같았다. 책을 덮고 아이가 종교를 흘겨보았다. - P172
아이가 천막 곳곳을 둘러보았다. […] 그런데 한창 둘러보고 있던 중에 오른쪽 누군가의 네모 칸에 꽃이 한 송이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화단의 화초 사이에 푸르스름한 석판이 깔린 것처럼 민둥민둥했다. 이름을 보니 학자였다. 붉은색들 속에 학자의 네모 칸만은 치솟는 화염 속 어느 한 부분에만 물이 뿌려진 듯했다. 여기저기서 펄펄 끓어오르는 불길과 상관없이 서쪽 범포 한구석, 학자의 칸만은 황량하고 조용했다. 그 민둥민둥한 범포 조각에 아이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은 날 동안 학자의 네모 칸이 단 한 송이도 없이, 붉은색 가운데 깊고도 검은 우물처럼 남아 있는 줄 몰랐다. 펄펄 끓던 아이의 마음이 끄느름히, 천천히 식기 시작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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