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만들어낸 홍화오성관리제는 천재적인 발견이자 발명으로, 모두를 자발적이고 자치적인 궤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소나 말에게 채찍을 쓰지 않고도 알아서 밭을 갈고 수레를 끌고 뛰어다니게 만든 것과 같았다. 다음 해에 1만 5000근을 생산하기 위해 부지런히 물을 주고 김을 매고 두둑을 손보았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멈추었다. 밤이면 돌아와 볼 수 있는 책을 읽고 침대와 탁자 맡의 꽃들을 세었다. 벌써 수십 송이를 모아 몇 줄이 빽빽해진 사람의 침대맡은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다섯 송이씩 줄을 맞춰 나란히 늘어선, 행진하는 붉은 군대 같은 꽃들을 그는 매일 한 번씩, 혹은 몇 번씩 군사를 검열하듯 살폈다. - P85
"이 책은." 아이가 말했다. "삽화 두 장당 꽃 한 송이씩 주겠다." 종교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아이에게서 종교는 열다섯 송이의 꽃을 한 번에 받았다. 열 다섯 송이를 침대맡에 붙이자 길게 늘어선 줄이 꺼지지 않는 등불 같았다. - P89
연극이 그렇게 끝났다. 무대 아래로, 마치 무대 아래에 애당초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연극을 본 뒤 돌아가는 30리 흙길에서 99구의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멀리 숙사에서 피어오르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석양 속으로 퍼져가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도. 터덕터덕, 타박타박, 대지로 떨어지는 소리가 차가운 대지를 손으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 대지는 망망하니 넓었다. 망망하니 넓고 까마득히 멀어 모든 소리가 대지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P94
두 기의 용광로 틈 사이로 내다보자 석양이 붉은 물처럼 지면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원래 하얗던 소금땅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여름날 물이 고였다가 가을과 겨울이면 말라버리는 웅덩이에서 검은 흙이 밟혀 올라와 석양 속에서 짙은 회갈색을 띠었다. 거기에 여섯 기의 용광로에서 반사되는 노란 불빛까지 더해지자 그곳의 땅과 사람들 얼굴에는 담황색과 자주색, 갈색이 한데 뒤섞였다. 그런데 음악의 얼굴만은 다른 남자나 여자와 달랐다. 그녀는 전혀 더러워 보이지 않는,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빨간 외투를 입고 회색 털목도리를 둘렀다. 처음 99구에 왔을 때 검게 빛나던 그녀의 머리칼은 도시의 유행에 따라 귀에서 찰랑거렸지만 지금은 어느새 하나로 땋아 등에 늘어뜨릴 만큼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로 학자의 뒤에 서 있었다. 카드를 치는 학자는 졌는지 얼굴에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학자 뒤에 있는 그녀의 얼굴이 붉은 기운에 눌리지 않는 하얀 보드라움과 윤기로 가득했다. 황허 강가로 불어오는 바람과 태양빛도 그녀에게는 너그러웠나 싶었다. - P110
그날은 실험이 용광로 옆을 지키는 차례였다. 매일 밤 간통범을 쫓아다니고 매일 밤 허탕을 쳤지만 그는 조금도 피곤해하지 않았다. 눈에 붉은 거미줄이나 그물처럼, 춘삼월 대지의 비옥한 땅에 만개한 빨갛고 노랗고 파란 꽃들같이 핏발이 서렸지만 정신은 극도로 또렷했다. 그의 눈은 넉넉하면서도 알찼다. 나란히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공원처럼 다양한 색깔을 품었고 그 속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발걸음이 쉼 없이 오갔다. 사람들 무리에서,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 P119
식사할 때든 일할 때든 음악은 대부분 나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이 음악을 배우고 피아노를 치던 청소년기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녀가 성 전체에서 가장 젊은 음악 교사이자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한 것은 무대에서 서양 악기인 피아노로 민요를 연주하면서부터였다. 그녀가 무대 위 피아노 앞에 단정히 앉아 <커다란 꽃가마>, <탐스러운 재스민>, <파란 해방의 날>을 연주할 때마다 무대 아래의 눈동자들이 반 짝반짝 빛을 내며 신기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대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눈동자들은 그녀에게로 날아오는 검은 깃털의 새 같았다. 특히 <공화국 혁명 행진곡>을 연주할 때 그녀의 열 손가락이 여름날 산야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경쾌하게 피아노 건반 위를 오가고 피아노가 그녀의 열 손가락 아래서 총소리, 대포 소리, 군인들의 호령 소리, 군마 소리, 교전과 승리, 축하의 장면을 진짜처럼 모방해내면 무대 아래에서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 P119
학자와 음악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실험이 용광로에서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지만 땅 위를 굴러가는 점 하나가 끝을 알 수 없는 흙길로 사라지듯, 학자와 음악과 상부를 태운 마차가 광야로 사라지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하늘에 흩어지지 않을 것 같은 구름이 끼어 구름 뒤 오후의 햇살이 연소될 수 없는 불처럼 흐릿해졌다. 자욱하고 검누른 구름 속으로 한 점 두 점, 그 칠흑을 비집고 점점이 뿌려지는 빛만 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입구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모두들 놀라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학자와 음악이 자신들 턱밑에서 사통과 쾌락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제 99구에서 결국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이제는 철을 찾고 나무하고 제련하는 매일의 단조로움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에 편안해했다. 오랫동안 떠들고 기억할 신선한 사건이 마침내 생겼다는 것은,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 끝나지 않은 공연을 기억하는 것과 같았다. 뛰어서 돌아온 실험이 입구에 마차가 만든 바큇자국에 서서 여기를 쳐다봤다가 저기를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은 실망과 경악으로, 머리 위 하늘의 시커멓지만 눈이나 비는 뿌리지 않는 구름처럼 잿빛이었다. - P122
"99구에는 100쌍도 넘는 눈이 있지." 내가 차갑게 큰 소리로 대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보고했어야 했어요." 안타까움과 후회 때문에 실험이 두 주먹을 쥐었다가 풀고, 풀었다가 다시 쥐었다. 꼭 허리쯤에서 독수리 두 마리가 날아오르려 했다가 내려가려 했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 P124
그는 누구의 침대맡이나 탁자 앞에서도 갑자기 늘어난 스무 송이의 작은 꽃을 찾지 못했다. 그 사람을 찾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나면서 실험은 이전의 원기 왕성한 모습을 잃어버렸다. 도둑맞은 뒤 범인을 찾지 못해 맥 빠진 사람처럼, 일해야 할 때는 일하고 끝내야 할 때는 끝냈지만 말수가 줄고 풀이 죽은 채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공훈이라는 대문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닫히고 자물쇠마저 채워진 듯, 실험의 앞길이 수문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 - P126
"갖고 싶나요?" 실험이 웃으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여기 스물다섯 송이는 더 이상 제게 필요 없습니다. 누구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 제가 피땀 흘려 얻은 이 두 송이를 드릴게요."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일주일 전에 그가 제련할 수 있는 강철 원료를 찾았다고 말했을 때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그 때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을 흘겨보듯 바라봤지만 이번에는 개선장군을 우러러보듯 신뢰와 의아함, 부러움이 촘촘하게 얽힌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필요 없나 봐요?" 실험이 갑자기 손에 든 작은 꽃 한 송이를 천천히 찢었다. 그러고는 손가락 틈 사이로 떨어뜨리자 바스러진 붉은 종잇조각들이 작은 나비가 공중에서 떨어지듯 서서히 빙그르르 떨어져 내렸다. - P133
아이와 상부에서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99구 마당을 깨끗하게 쓸고 문과 창문을 말끔히 닦았으며 대문에 커다랗고 붉은 대련까지 붙였다. ‘천지를 흔드나니 바다처럼 드넓은 곡물 창고로 서구를 비웃고, 시간을 붙드나니 산처럼 높은 강철로 천하를 호령하네‘라는 대련의 두 구절은 웅장하면서 기백이 넘쳤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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