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정전이 공존했다. 비평가들은 서로 다른 정전의 목록을 작성하며 충돌했다. 반대자는 늘 반대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세대마다 좋은 취향(내 것)과 저속한 것(네 것)을 구별해왔다. 모든 문학적 흐름은 기존의 것을 비우고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그 자리를 채워왔다. 그러니 결국엔 시간의 문제였다. 키케로는 혁신적인 카툴루스를 재능 없는 젊은이라고 생각했고, 카루스는 카이사르를 싫어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다 같이 로마의 정전으로 들어왔다. 에밀리 디킨슨은 생전에 단 일곱 편만의 시를 출판했으며 편집자들은 그녀가 쓴 글의 구문과 구두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앙드레 지드는 갈리마르 출판사에 들어온 프루스트의 원고를 거부했다. 보르헤스는 잡지 《엘 수르》에 「시민 케인」에 대한 혹독한 비평을 써놓고 나중엔 쓰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 P475
고전은 시간적 한계를 초월하고, 다가올 시대를 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고전은 매일 매일 시험받는 과정에서 온전히 출현한다. 암울한 시기를 지나도 그 지속성은 깨지지 않는다. 역사적 전환점을 극복하고, 심지어 파시즘과 독재에 의해 봉헌된 죽음의 입맞춤에서도 살아 남는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예이젠시테인(Sergei Bisenstein) 의 선전 영화도, 나치를 위한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의 선전 영화도 여전히 우리에게 뭔가의 인상을 남기고 있다. - P475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은 종이 재활용 업체에서 일한 바 있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출판하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화자는 지하실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동굴은 축축하게 썩은 종이로 지옥 같은 악취를 풍긴다. 일주일에 세 번 트럭이 종이뭉치를 역으로 가져가 마차에 싣고 제지공장으로 운반한다. 그러면 그곳 작업자들이 종이를 녹이는 알칼리와 산이 든 탱크에 종이뭉치를 내던진다. 책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훌륭한 작품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파괴를 막을 길은 없다. 그는 자신에 대해 "나는 사랑 넘치는 정육점 주인일 뿐이다."라고 적는다. 그의 업무는 지하실에 들어오는 책의 마지막 독자가 되는 것, 그리고 책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다.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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