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르륵 소리를 내며 쉼 없이 흔들리던 나무가 움직임을 멈췄다. 저수지 수면에 윤슬이 반짝이며 빛났다. 바람이 멎고 새들도 지저귀지 않고 고요해졌다. 그때 어디선가 높은 휘파람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휘이이– 두 사람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슬프기도 신비롭기도 한 귀신 새 울음소리. 12년 전 아득히 먼 곳에서 넘어와 지금 여기에 도착한 듯 한 소리. - P251

"한 번 깨진 관계는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는 건 비유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해 봐. 우리는 깨진 게 아니라 조금 복잡하게 헝클어진 거야. 헝클어진 건 다시 풀 수 있어." - P252

도담은 불안이 익숙했다. 어쩌면 도담은 해솔과 운명처럼 얽힌 그 불안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 P281

도담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해솔에 대한 도담의 마음은 연애 감정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할머니의 사랑과 비슷할 것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하는 사랑처럼 한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이건 한때 끓고 식는 종류의 마음이 아니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도담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으로 다짐했다.
[…]
"난 빠진 게 아니라 사랑하기로 내가 선택한 거야." - P286

삶이 반복된다는 불안은 도담이 잘 아는 감정이었다. 승주가 내내 불안하게 생각해 오던 일이 기어이 찾아와 현실이 되었다는 점에서, 도담은 승주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다. 한편으론 화를 내고 애절하게 붙잡는 승주의 반응을 보니 다행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승주에게는 승주의 문제가 있었다. 도담은 조금 안심이 됐다. - P287

그러나 안전거리를 둔다고 이별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밀려드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승주는 자신의 계산이 틀렸음을 알았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었음을, 지금 승주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조차도. - P288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 P290

오랜 시간 외면하고 회피했던 창석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자 창석이 살아 있을 때 싸우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해졌다. 죽음. 모든 가능성이 종료되고 더는 회복할 수 없는 것.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게 삼켜 버리는 것. 창석은 그 무서운 것과 싸우던 사람이었다. 창석이 하던 일은 생명을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지 않도록 맞서는 일이었다. - P292

도담에게 있어서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무언가를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손 내밀면 함께 빠지지 않을까. 언제부턴가 도담은 먼저 손 내밀지 않았다. 사람이 무언가를 기꺼이 감수 하려는 마음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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