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글을 쓰려고 펜을 집어들었을 때,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펜에 차례로 커다란 눈물방울 같은 얼룩이 생겨나는가 하면, 더욱 놀라운 것은, 때 이른 죽음이나 부패에 관한 감미롭고 유창한 문장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그것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것보다 더 나빴다. 왜냐하면 글이란–올랜도의 경우가 증명하듯이–손가락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펜을 조작하는 신경이 우리 몸의 모든 섬유를 휘감아, 심장을 깁고, 간을 관통한다. 그녀의 통증의 근원은 왼쪽 손가락 같았으나, 그녀는 몸 구석구석에 독이 퍼지는 것을 느꼈고, 마침내 가장 필사적인 치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시대 정신에 무조건 항복하고, 남편을 하나 얻는 것이었다. - P213

그녀는 사치스럽게 머리를 푹신한 베개에 눕히면서 한숨을 쉬었다."나는 오랜 세월을 거쳐 행복을 찾아다녔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명성도 찾아다녔지만 놓쳤고, 사랑은 아직 알지 못한다. 인생을–아니, 죽음이 더 낫다. 나는 수많은 남자와 여자를 알아왔는데"라고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아무도 이해하지는 못했다. 여러 해 전에 그 집시가 말했듯이–하늘만을 지붕삼아 여기 평화롭게 누워 있는 편이 낫다. 그건 터키에서 있었던 일이지. - P218

이튿날 아침 식사 때 그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마머 듀크 본스 롭 쉘머딘이라고 했다.
"알고 있었어요!?라고 올랜도가 말했는데, 왜냐하면 그에게는 야성적이고, 거무스레한 깃털달린 것의 이름에 어울리는 어딘가 낭만적이고, 기사도적이며, 정열적이고, 우울하면서 결연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그 이름은 떼까마귀의 강청색의 푸른빛, 까악까악거리는 그들의 쉰 웃음 소리, 은빛 웅덩이로 뱀처럼 꼬면서 떨어지는 그들의 깃털들, 그리고 곧 묘사하게 될 그 밖의 수많은 것을 연상케 했다. - P220

"당신, 남자가 아니라는 게 확실해요?"라고 그는 걱정스럽게 묻곤 했고, 그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이 여자가 아니라는 게 정말일까요?"라고. 그리고는 그들은 더 이상 법석 떨지 않고, 이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각자가 상대방의 재빠른 공감에 너무도 놀랐기 때문인데, 그것은 각자에게 여자가 남자처럼 관대하고 솔직할 수 있으며, 또한 남자가 여자처럼 신비스럽고 섬세할 수 있다는 너무나도 큰 사실을 알게 되어, 그들은 즉시 그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226

그녀는 지금 눈에 들어온 이상한 광경 때문에 땅에 쓰러질 뻔 했다. 정원이 있었고, 몇 마리의 새들도 보였다. 세상은 변함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그녀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내내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라고 그녀는 외쳤다. - P239

그녀의 감정이 너무 강렬해, 그녀는 자기 몸이 녹아버린 상상 마저 들었고, 실제로 약간의 실신 상태에 빠졌다. 한순간 그녀는 아름답고 무덤덤한 광경을 응시하고 서 있었다. 마침내 이상하게 그녀는 의식을 회복했다. 심장 위에 안고 있던 원고가 생물처럼 꿈지럭거리더니 고동치기 시작했으며, 더욱 이상한 것은, 올랜도와 원고가 아주 멋지게 교감하고 있다는 증거로, 올랜도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원고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읽혀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읽어주어야만 한다. 읽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녀의 가슴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자연에게 맹렬하게 대항했다. 주변은 온통 사슴 사냥개들과 장미 덤불이었다. 그러나 사슴 사냥개나 장미는 원고를 읽을 수 없다. 그것은 전에는 그녀가 결코 깨닫지 못했던 신의 슬픈 실수였다. 인간만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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