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순수가 보호받고 위안받을 때의 정신 상태라면, 어린 날의 불안은 그 사람이 최소한으로만 보호받고 위안받는다고 느낄 때의 정신 상태다. - P113
2011년 새뮤얼 R. 서머스와 마이클 I. 노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지된 반흑인 편견이 감소했다고 대답한 백인 응답자들은 반백인 편견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인종주의를 제로섬 게임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 관점은 너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면 나에 대한 적대감이 늘어난다는 제프 세션스 전 법무장관의 말에 잘 압축되어 있다. 이 연구가 진행되던 당시 미국 백인들은 실제로 반백인 편견을 반흑인 편견보다 더 큰 사회문제로 여겼다. 오로지 한 명을 제외한 미국 대통령 전원이 백인이고, 역사적으로 의석의 90퍼센트를 백인이 차지해왔고, 백인이 보유하는 평균 순자산이 비백인보다 10~13배 높은데도 그렇게 믿었다. 사실 인종 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30년 전 중위 흑인 가구의 보유 자산은 6,800달러였으나 지금은 불과 1,700달러이며, 이에 반해 중위 백인 가구의 자산은 같은 기간 10만 2,000달러에서 11만 6,800달러로 증가했다. 자원의 축적이 너무 불균형해서 백인성이라는 인종 프로젝트는 실질적으로 백인 과두체제를 뜻한다고 철학자 린다 마틴 앨코프는 표현한다. - P119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눈이 멀 때, 시야가 캄캄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눈을 뜬 채로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하얗게 변한다. 나는 어디를 가든 백색을 본다. 나는 그 백색의 간계를 감지한다. 심지어 내 생각마저도 엑스선 찍을 때 쓰는 방사선 불투과성 조영제를 주입한 것마냥 백색으로 얼룩졌다는 것을 안다. 그 얼룩은 나의 삶을 남한테 끊임없이 사과하도록 만든다. 나는 더 이상 내 삶을 기대에 못 미치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전과 반대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을 백인성과 결부시켜 바라본다. - P121
내가 백인성 문제를 거론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이 나라의 자본주의적 백인우월주의 위계질서 속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명명백백하게 따져봐야 하는데 여태 그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꼼꼼히 따져보기는커녕, 일부 아시아인은 인종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고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백인들이 하는 똑같은 소리 못지않게 잘못된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인종 정체성 때문에 차별만 받은 것이 아니라 혜택도 누렸기 때문이다. 인종을 나와 무관하게 여기는 이 아시아인들이 바로 내 사촌이고, 내 옛 남자친구이며, 브루클린에 안락하게 틀어박혀 맑고 포근한 날 불현듯 나는 인종에 영향받지 않아도 되고 그저 자진해서 그 문제를 생각할 뿐이라고 여기는 나 자신이다. 나 또한 오로지 나와 내 직계 가족만을 위해서 살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전부 누르고 앞서가라는 이 나라의 신자유주의 정신과 일치된 생존 본능을 갖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을 옥죄는 수치심은 묻어버린 채 말이다. 정도는 조금씩 달라도 미국에서 자란 아시아인은 모두 내가 묘사한 수치심을 익히 알고 있으며, 그 기름진 불길을 느껴봤다. - P122
『정동 이미지 의식』에서 정신분석학자 실번 톰킨스는 경멸과 수치심이 사회에서 어떻게 구분되는지 규명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멸은 결속을 저해하지 않도록 드물게 사용되는 반면, 위계적으로 조직된 사회에서는 개인, 계급, 국가 사이에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암묵적 동의 아래 빈번하게 사용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멸은 흔히 비판자가 타인이 저지른 일에 수치심을 느끼는 것으로 대체된다. 또는 비판자가 타인이 저지른 일에 괴로움을 표출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또는 타인이 저지른 잘못에 시정을 요구하며 분노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 P124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왔건, 아프가니스탄에서 왔건, 한국에서 왔건, 1965년 이후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역사는 미국을 넘어서 각자의 출신국으로 확장된다. 그곳에서 우리의 동족들은 서구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미국이 세우거나 지원한 독재 정권에 의한 대량 살상을 겪었다. 미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애쓰느라고 우리는 인생에서 제2의 기회를 선사받은 양 황송해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뿌리는 이 나라가 우리에게 부여한 기회가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의 자본주의적 확장이 우리의 조국의 피를 빨아 부를 챙긴 방식이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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