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오순도순했던 외갓집 풍경도 아버지의 패악이 굳어지면서 점점 뜸하게 연출되었다. 가족 중 누구 하나의 불행이 너무 깊어버리면 어떤 행복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는 법이었다. 어머니도 점차 외갓집 발길을 끊었다. - P133

이모부는 그런 사람이었다. 비유하자면 이모부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삼십 년이 가깝도록 단 한 번의 결행이나 연착 없이 정시에 도착하고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 같은 사람이었다. 기차라면, 쇠바퀴를 굴려 굽이굽이 강가도 달리고, 덜컹컹 산자락도 달리는 기차라면, 폭설 후에는 결행도 하고 마주 오는 다른 기차를 피하느라 연착도 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세상의 다른 부류들한테는 이해받기 힘들겠지만 하여간 이모부가 생각하는 기차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모부의 기차는 굽이굽이 강가를 달리더라도 절대 한눈을 팔면 안 되고 마주 오는 다른 기차를 들이받고라도 다음 역에 늦게 도착 하면 안 되는 기차였다. - P141

이모와는 특별했지만 나는 이종사촌들과는 그리 각별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 철이 들어 서로 교류를 나눌 수 있을 만한 나이에 이르러서는 그들 둘 다 유학을 떠나버렸다. 유학을 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이종사촌들과 공유할 만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가진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나 또한 내 어머니처럼 이종사촌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도저히 대범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와 달랐던 점은 이종사촌들에 대한 질투심을 감쪽같이 잘 숨기며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숨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질질 흘렸다면, 만약 그랬다면 내 인생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완벽한 실패작이었을 것이다. - P142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미소 짓는 주혁의 얼굴에서 이모부의 얼굴을 읽어냈다. 지난 4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내가 보았던 이모부의 의례적인 미소가 거기 있었다. 아니, 불발이나 연착 따윈 죽어도 용납하지 않는, 그래서 인생을 심심하게 만드는 이모부의 얼굴이 아들인 주혁에게 고스란히 옮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랬다. 주리와 주혁이는 이모의 자식이기도 했지만 역시 엄연한 이모부의 자식들이었다. 나와 진모가 어머니의 자식이면서 아버지의 삶으로 많은 부분 규정지어진 것처럼. - P145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 P152

그 애를 그렇게 방치할 수 없었다. 푸르른 일몰의 시간, 사방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올라가고 있는 그 시간, 그 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우리들은 아버지의 자식들이었고 그랬으므로 푸르른 일몰의 시간은 숙명적인 우리의 아킬레스건이었다. - P153

지난 몇 년 동안의 평화를 어떻게 견디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머니는 이 불행을 해결하는 데 온갖 신명을 다 내고 있었다.
벽을 붙잡고 절규를 하며 울부짖던 어머니의 과장법은 이렇게 쓸모가 있었던 것이었다. 부풀릴 수 있을 만큼 한껏 부풀려놓은 불행에서 이처럼 맵시 있게 빠져 나오는 어머니. 8월에 보는 어머니는 역시 과장법의 대가였다. 나는 진실로 어머니에 대해 감탄했다. - P156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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