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생생 해진다. 이불을 걷어치우고 베개를 밀어붙이고, 어머니는 지금부터 한판 붙어도 끄떡없다는 투다. 이 놀라운 재주, 그것은 마치 태엽이 다 풀려 늘어져 있던 장난감 강아지에게 있는 대로 태엽 밥을 먹인 후의 돌변보다 더 돌연한 것이어서 언제나 나를 기막히게 만든다. 지칠 대로 지쳐서 지푸라기처럼 늘어져 있는 어머니를 대할 때는 짜증이, 태엽이 감긴 후의 생생한 어머니를 대할 때는 적의가 치솟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대응법 또한 그 못지않게 변환이 신속한 것이긴 하지만. - P61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 가사의한 활력일 것이었다.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 P64

생각했던 것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두 남자를 놓고 저울질하는 이런 게임은 훨씬 어려워······. - P70

사실을 말하면 나라고 해서 화창한 5월의 어느 휴일에 초록의 향연이 아주 근사한 야외를 자동차로 달리는 일이 좋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여러 가지 경로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남자와 함께하는 시간들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사랑이란 그다지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만약 김장우가 없었다면 내가 나영규와 더불어 사랑으로까지 가버리는 일은 아주 쉬운 듯이 여겨졌다. 그에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이 없는 한은. - P74

"진진씨 배가 고플 즈음, 아주 자연스럽게 이 통나무집을 지나기 위해서 드라이브코스 짜느라 머리 좀 썼어요. 나는 이런 계획 짜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요. 시간이 내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시간을 장악한다는 느낌도 괜찮고요." - P74

추억까지 미리 디자인하고 있는 남자, 현재를 능히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어 먼 훗날의 회상 목록까지 계산하고자 하는 그의 도도한 힘이 나에게는 조금 성가셨다. 하지만 나는, 추억이란 계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진다는 등,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에 그렇게 머리를 쓰고 살자면 피곤하겠다는 등의 분위기 깨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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