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골 여성들은, 나에게 용기는 전염성이 있고 힘은 숫자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혼자서 안 되는 것은 여러 사람이 같이하면 이루어지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들은 수백 명의 실종자 어머니와 아내로 구성된 전국적인 조직에 속해 있었다. 그 어머니와 아내들은 매우 용감한 여성들이어서 정부가 쉽게 해산시키지도 못할 정도였다. 공식 발표는 실종자들이 존재한다는 공산주의적 선전을 부정하고, 그녀들을 체제 전복적이고 반애국적인 미친 여자들이라고 묘사했다. 검열에 순응한 언론은 이 여성들에 대해 다루지 않았지만, 여러 해 동안 독재 정권을 규탄하는 운동을 지속해 온 인권 운동가와 망명자들 덕분에 해외에서는 잘 알려졌다. - P406
연말이면 그는 나에게 우편으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내곤 했다. 몇몇 외국인들이 국내 소식들, 성공한 가족사진들과 함께 지인들에게 보내는 연하 회보의 하나였다. 이런 편지에는 성공, 여행, 출생, 결혼의 이야기만 담겨 있다. 파산, 수감, 암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살하거나 이혼한 사람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그 어리석은 전통은 우리 문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랄드 피스케의 연하 회보는 가족들의 환상이 담긴 연하장보다 훨씬 나빴다. 그것은 온통 새 이야기뿐이었다. 보르네오의 새, 과테말 라의 새, 북극의 새. 북극에도 새가 있다니 정말 믿기 힘든 일이다. - P408
나는 홀리안 브라보의 학대를 ‘가정폭 력‘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오히려 ‘사고‘라는 핑곗거리를 찾아주었다. 그가 과음하는 바람에 손이 올라간 거라고, 내가 그를 자극했다고 생각했고, 그가 무슨 문제가 생겨서 나한테 화풀이를 했지만 이제 용서를 빌고 다짐을 하고 있으니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여겼다. 내가 그에게 매인 게 하나도 없고 그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으며 자유로웠고 혼자인 채로 지냈지만, 그 학대를 끝장내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두려움 때문이었던가? 그렇다, 두려웠다. 그러나 불안, 정서적 의존, 타성, 침묵의 규율로 인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고립시켰다. - P432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피했고, 얀테의 법칙이라는 북유럽적인 관념을 극단적으로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 법칙은 이런 뜻이었다.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거나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말라. 가장 눈에 띄는 못이 망치에 맞는다는 걸 기억해라." 그는 자신이 발견한 새들에 대해서도 자랑하지 않았다. - P445
나는 최근에 네가 하얀 옷을 입고 행복해하는 동성애 여성 커플의 혼배미사를 열어주었다고 주교에게 불려가 질책을 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교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결혼식 사진을 네 코앞에 들이댔다. "첫 영성체 같은데요." 너는 비웃었다. "당장 철회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주교가 그렇게 명령했다. 너는 순종 서약의 허점을 이용했다. "주교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언론에 알리지 않고 일단 유보해 두겠습니다, 각하. 저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 양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모든 인간은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책임지겠습니다." - P454
너는 불의, 계급제도, 가난에 분노했다. 교회의 위계질서, 미신적 종교, 그리고 정치인과 기업가, 수많은 사제의 어리석고 편협한 잣대에 반발하기도 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던 콩고에서 너는 행복해했다. 너는 목수이자 기계공이었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채소를 심고 돼지를 키웠다. 그곳은 너의 조국이 아니었고 애초에 조국이 바뀔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저 도울 수 있는 곳에 가서 돕고자 했을 뿐이었다. - P457
너도 알다시피 그즈음에 내가 계단에서 넘어졌잖니. 전혀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많이들 하는 고관절 교체 수술과 몇 달간의 운동으로 다시 걸을 수 있었지. 그런데 더 이상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지팡이, 에텔비나의 강한 팔, 보행기, 그리고 나중에는 휠체어가 필요했다. 휠체어에 앉는다는 것의 가장 나쁜 점은 내 코가 다른 사람들의 배꼽에 닿고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게 그들의 코털이라는 점이다. 이제 자동차, 2층에 있는 내 사무실, 극장과는 안녕이었지. 그리고 완전히 마일렌의 손에 맡기게 된 재단과도 작별해야 했다. 나는 타인의 보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겸손해지면 의존하는 나날의 굴욕감이 덜 아프다. 그러나 신체적인 장애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가져다주었지. 엄청난 마음의 자유를 나에게 안겨 주었단다. - P464
기쁘고 궁금한 것도 사실이지만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저편에는 오로지 적막함이 존재할 수도 있다. 우주 공간에서 부르짖고 또 부르짖는 영원한 방황만이 존재 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빛이 있을 것이다. 많은 빛이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의 순간은 아주 짧다. - P475
나는 지난 20년 동안 죄를 지을 기회가 없었고 이전의 잘못에 대해서는 이미 대가를 치렀다. 나는 간단한 행동 규칙을 따라 살았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 하라는 규칙 말이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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