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 하나의 생존 형식이었다. 노예들은 유머를 통해서 노예제로부터 필연적으로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또한 유머는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암호였다. 그곳에서 주인님은 외부자이고 놀림의 대상이다. 랠프 엘리슨은 에세이 「웃음의 호사스러움」에서 백인은 흑인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놀림을 당했다는 전반적으로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낀다고 적고 있다. - P80

결국 흑인이든 백인이든 어떤 여자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프라이어는 자신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생각한다. 이것은 프라이어가 흑인 남성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근육질의 외피를 벗어버리고 자기 치부를 드러내는 방식인 것이다. - P83

한은 가혹했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미국에 의해 지탱되었고 정치적으로 바로 세우지 못한 독재의 역사 때문에 쌓인 울분, 아쉬움, 수치심, 우울, 앙심의 혼합물이다. 한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다음 세대로 대물림될 수도 있다.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한을 느끼는 것이다.
프라이어의 온갖 흉내 연기 사이사이로 분노와 절망이 스친다. "내가 백인이 아니고 흑인이라서 다행이에요. 당신네 백인들은 달에도 가야 하잖아요"라고 말할 때 서리는 프라이어의 우수는 웃음이 그친 한참 후까지도 맴돈다. 그 우수는 그가 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앙리 베르그송은 유머는 숭고함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신성이 배제되어 있고 온전하게 인간적이라고 적고 있다. 즉 우리는 유머를 통해 초월성보다는 우리의 피부를 통절히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 P83

프라이어는 내가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으로 칭하는 것을 채널링하는 사람이었다. 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 P84

소수적 감정은 현대 미국문학에 잘 등장하지 않는데, 그런 감정이 생존과 자기 결정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서사에 잘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소설의 구성 원리와는 다르게, 소수적 감정은 중대한 변화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의 결여에 의해, 특히 변하지 않는 구조적 인종주의와 경제 상황에 의해 촉발된다. 소수적 감정을 다루는 문학은 인종 트라우마를 개인적 성장을 이루기 위한 극적인 장치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체제의 트라우마가 개인을 제자리에 묶어 두는 현상을 탐구한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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