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흑인과 아시아인의 관계는 그동안 꽤 힘들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 아시아인들은 더 이상 해충이나 짐승처럼 취급받지 않고 ‘모범 소수자‘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즉, 흑인들처럼 범죄를 저지르거나 빈곤하지 않은, 근면하고 ‘우등한‘ 소수자라는 뜻이었다. 수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이런 고정관념을 받아들였지만, 백인 우월주의의 위계질서에서 봤을 때 모범 소수자라는 고정관념은 아시아인이 백인만큼 우등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시아인은 흑인과 비교했을 때에 한해서만 우등하다는 의미였다. 미국 백인 사회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을 놓고 소수자가 근면하게 일하면 정부의 사회적 지원이 필요 없다는 증거라며 자기들 편리하게 이용했다. 고정관념을 받아들인 아시아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모범 소수자 지위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영리하고 성공적인 집단으로 간주된 것은 맞지만, 그와 동시에 로봇 같고, 무감정하고,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존재, 즉 기본적으로 여전히 인간 같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는(invisible) 인종이어서, 언론매체, 정치, 오락물 등에서 찾아볼 수 없고 우리의 인종 정체성 때문에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지도적 위치에도 오르지 못하고 간과되었다. - P13

나는 래미시 소재 와이오밍 대학교에서 개최된 낭독회에 참석해야 했다. 이 무렵에는 극심하게 우울한 상태였다. 얼굴을 도려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간신히 비행기를 탄 것만도 기적이었다. 예상대로 낭독회는 순조롭지 못했다. 청중에게 내 시를 낭독하는 일은 나의 한계를 난폭하게 깨닫는 것과 같다. 청중이 지닌 시인에 대한 관념과 내가 그 시인이라는 증거의 부실함 사이에 놓인 무한대의 간극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도저히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인은 존재감이 별로 없다. 아시아인은 미안스러운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는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조차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는다. 다양성 요건을 채울 만큼 인종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너무나 탈인종적이어서 실리콘 같은 존재다. - P23

대중의 머릿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모호한 연옥 상태에 놓인다.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흑인에게는 불신당하고 백인에게는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흑인을 억압하는 일에 이용당한다. 우리는 서비스 분야의 일개미이며 기업계의 기관원이다. 우리는 리더가 되기에 적절한 "얼굴"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숫자를 처리하며 기업의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기름이나 치는 중간 관리자가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콘텐츠를 문제 삼는다. 저들은 우리가 내적 자원이 없다고 여긴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역부족이라는 기분에 함몰된 내 상태를 감추기 위해 물밑에서 미친 듯이 발을 저으며 언제나 과잉 보상을 한다. - P26

우리는 마치 서로 밀어내는 두 개의 음이온과도 같았다. 소년이 나를 함부로 대한 것은 그가 자신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내가 소년을 함부로 대한 것은 내가 나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혐오한다는 증거가 있나? 왜 나는 그의 수치심이 그 네일숍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 P30

아이오와에서 미량으로 솔솔 새어 나오던 인종주의는 은근히 야비했다. 나는 웬 피해망상이냐며 항상 나 자신을 비판했다. 강의 중에 내가 인종 정치를 거론할 때마다 경멸의 장벽에 직면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급기야 나는 그들의 경멸을 내면화하여 인종을 주제로 하는 시들을 너무나 인종스럽다며 비웃었다. 아시아 정체성이라는 주제만으로는 예컨대 자본주의처럼 좀 더 묵직한 주제와 함께 엮지 않는 한 불충분하고 부적절하다고, 저들은 내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아이오와 문예창작 과정에 다니던 다른 유색인종 작가 중에 정체성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시와 소설에서 인종적 요소를 말끔히 지워버린 사람들을 알고 있다. 지금 되돌아보면 묘하게도 그들은 전부 아시아계 미국인이었다. - P35

아무 생각 없는 백인에게 인종 문제를 참을성 있게 가르치기란 정말 고되고 피곤하다. 내가 가진 설득의 능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한다.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수다로 끝날 수가 없다. 그것은 존재론적이다. 그것은 남에게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아픔을 느끼는지, 나의 현실이 그들의 현실과 왜 별개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아니, 실상은 그보다도 훨씬 더 까다롭다. 왜냐하면 서구의 역사, 정치, 문학, 대중문화가 죄다 저들의 것이고, 그것들이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7

미국인 대다수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티슈를 크리넥스라고 부르듯 중국인을 아시아인을 부르는 대유법으로 여긴다. 저들은 우리가 수많은 민족의 느슨한 연합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시아계 미국 사회에서 "우리"를 가늠할 자격 조건은 너무나 많다. 남동아시아인, 남아시아인, 동아시아인과 태평양 섬 주민, 성 소수자와 이성애자, 무슬림과 비무슬림, 부자와 빈민일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아시아인은 모두 자기를 혐오할까? 나를 갉아먹는 자존심이 인종적 현상이 아니라 그냥 나 개인의 빌어먹을 문제라면? - P38

아시아인은 같은 인종 집단 내에서 가장 소득 격차가 심하다. 노동계급 중에 아시아인은 의류 산업과 서비스 산업에서 제3세계 수준의 노동 환경에 노출된 채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노예 같은 존재인데도, 복지가 축소되면 백인 노동자만 타격을 입는 것처럼 가정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 점의 불평이라도 시작할라치면, 미국인들은 갑자기 우리를 다 안다는 식이다. 너희가 왜 화를 내! 다음은 너희가 백인이 될 차례야! 우리가 조립라인 위에 줄줄이 놓인 아이패드인 양. - P38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은 사회의 보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대조되는 순전한 생물학적 삶이며, "누구든 그를 죽여도 살인죄를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오로지 영원한 도주를 통해서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식물이나 돼지처럼 인간의 몸이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으로 축소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매춘부가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홀로 죽으면, 그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을까? - P40

이민자가 동화됨으로써 얻는 특권은 남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동화(assimilation)를 권력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일단 힘이 생기면 존재가 노출되어서 과거에 도움이 되었던 모범 소수자 자격이 이제는 그 사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어서 그렇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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