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날 오후 홀리안과의 관계는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랑이 결여된, 단순하고 순수한 욕망만이 있었다. 모호함이나 자책감이 없는 난폭하고 적나라한 욕망,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배려하지 않는 욕망. 절대적인 쾌락에 빠진 우리는 우주의 유일한 남자와 유일한 여자였다. 오르가슴의 폭발은 내 안에 숨겨진 여자, 거울 속의 그 낯선 여자, 뻔뻔스럽고 반항적인 여자, 도전적이지만 행복하고 부정한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강렬했다. - P186

나는 돈을 충분히 벌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결혼 생활 때처럼 집안 살림을 꾸렸지만, 파비안은 내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돈을 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돈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지금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 깨달음이 참 새로웠다. 우리 여성은 처음에는 아버지, 나중에는 남편의 부양을 받는 존재로 여겨졌다. 상속을 받든 스스로 벌든 자기 소유의 재산이 있는 경우에도 이를 관리할 남자가 필요했다. 투자는 고사하고 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돈을 버는 것은 여성적이지 않았다. 나는 훌리안에게 내가 돈을 얼마나 갖고 있으며 어떻게 쓰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저축한 돈이 있다거나, 그의 도움 없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혼한 상황이라면 불가능했을 독립성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기혼 여성은 남편의 동의와 서명 없이는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었다. - P205

밖에서 보면 맞는 말이지만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것은 하나도 없다. 부부의 내밀한 관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왜 다른 사람 눈에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누군가는 견디는지 아무도 모른다. - P209

반면에 홀리안은 어디든지 쏘다녔다. 그는 죄가 없었다. 오직 나만이 부정한 여자이자 첩이었고, 애인의 아이를 임신한 채 겁 없이 뽐내고 다니는 제멋대로인 여자였다. 나를 너무나 사랑해 주고 키워준 이모들조차 내 행동이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 P210

욕망의 예속은 얼마나 긴 것인가! 거울 속의 여인에게서 50년간의 투쟁의 흔적과 몸과 마음의 피로가 보이던 그때 나는 내 반평생 그 어느 때보다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다. 반면 홀리안에게 나이는 선택 사항이었다. 그는 항상 서른 살로 살기로 마음먹은 남자였고 실제로 거의 늘 그랬다. 다른 사람들이 냉혹한 죽음을 응시할 나이가 될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젊고, 평온하고, 명랑하고, 바람둥이였다. "결국 마지막에 후회할 일은, 미처 저지르지 못한 죄들이야." 그게 그의 말이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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