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재봉사이고, 게다가 변덕스럽다. 추억은 바늘을 안팎으로, 위아래로, 이리저리 누빈다. 우리는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뒤에 뭐가 오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테이블을 향해 앉거나, 잉크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동작이 수많은 무관한 조각들을 흔들어놓아, 이들은 마치 강풍 속의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열네 식구 가족의 속내의처럼, 때로는 밝게, 때로는 어둡게 늘어져 있는가 하면, 위아래로 깔딱 거리고, 밑으로 잠기는가 하면 휘날리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은 아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단 하나의 분명하고 단순한 일이 아니라, 거기에는 날개의 퍼덕임과 떨림, 그리고 빛의 명멸이 수반된다. - P71

(왜냐하면 우리는 결심만 한다면 기억이라는 말괄량이와, 그 밑에 딸려 있는 불한당들을 모두 쫓아낼 수 있으니까) - P73

그는 펜을 손에 쥔 채 여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처럼 글 쓰는 일을 중단할 때 우리는 파멸한다. 반란군이 요새 안으로 들어오고, 우리 군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이때다. 전에 한번 그가 중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랑이 무서운 폭도들과 함께, 피리와 심벌즈를 울려대며 어깨에서 피 묻은 머리 타래를 풀어헤치고 쳐들어왔다. 올랜도는 사랑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맛보았다. 이제 다시 한 번 손을 놓자, 이때 생긴 틈으로 심술쟁이 노파 야망과, 마녀 시와, 매춘부 명예 욕이 뛰어들어와, 이들은 합세해서 그의 심장을 그들의 무도장으로 만들었다. 자기 방에서 홀로 곧바로 서서, 그는 자기 종족의 일급 시인이 되어 그의 이름에 불멸의 빛을 가져오겠노라고 맹세 했다. - P73

다소간에 글 쓰는 일의 혹독한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여기 새삼스럽게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글을 썼고, 마음에 들었다가, 읽어보니 형편없다는 느낌이 들어 고쳐보고는 찢어버렸다. 빼고, 보태고, 무아경에 빠졌는가 하면 절망한다. 기분 좋게 잤는가 하면 불쾌한 아침을 맞는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가 하면 곧 사라져버린다. 완성된 그의 책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는가 하면 사라져버린다. 등장인물이 되어 밥을 먹고, 길을 걸으면서도 등장인물이 되어 말을 하고, 우는가 하면 웃고, 이런저런 문체를 놓고 고민하며, 영웅적이고 화려한 문체를 썼는가 하면 이번에는 평범하고 소박한 문체를 택한다. 어떤 때는 템페 골짜기에 있는가 하면, 그다음에는 켄트나 콘월의 들판에 있다. 그러고는 자기가 비범하기 이를 데 없는 천재인지, 아니면 세계 제일의 바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 P74

불행하게도 시간은 동물과 식물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꽃피고 시들게 만들지만,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는 그처럼 단순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의 정신은 시간이라는 실체에 대해 마찬가지로 묘하게 작용한다. 한 시간은 일단 그것이 인간 정신의 기묘한 영역에 머물게 되면, 시계상 길이의 50배나 100배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한 시간은 정신의 시계로는 정확히 1초로 나타낼 수도 있다. 시계의 시간과 정신의 시간의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괴리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앞으로 보다 충분한 검토를 요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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