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 많은 수영장에서는 어디가 고장 난 것처럼 부자연스러워지곤 한다. 다른 인종이나 다른 국적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는 그나마 좀 나은 듯한데, 어째서인지 한국인들에게 둘러 싸여 있을 때는 곧잘 움츠러들거나 얼어버린다. 한국인이 내게는 크립토 나이트라도 되는 양 영 맥을 못춘달까.
아니, 실은 그 반대가 보다 정확한 내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이 높아지는 느낌. 오히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고 생각이 과열되어서 오작동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 - P45

아무래도 나는 내심 이 수영장이 일종의 도피처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이곳은 남과 나를 비교하며 일희일비하는 내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는 곳이기를, 타인의 기준이나 기대, 평가 같은 것은 통용될 수 없는 곳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충전의 시간. 내가 나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그 모든 것과 단절하는 비움의 시간. 나는 그런 것을 기대했던 것 같고 그런 것을 원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 P48

한국과는 다른 것. 한국을 벗어났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 한국이 아니기에 비로소 가능한 내가 되어보는 것. 우리는 적어도 여기 있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새로워질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우리를 옭아매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간 살아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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