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들어 가면 그들은 어떤 언어를 통해서 내 안에 파고들어요. 그 언어로 자기들은 다수이고, 하나가 아니며, 그중에 하나는 모두의 중첩이라고 말해요. - P9
우리가 마주쳤던 출구를 생각하면, 선장이 곧바로 초록색 포도 한 송이처럼 우리를 떨궈준 계곡에서 첫발을 내딛고 봤던 풍경을 생각하면, 하루 일을 마치고 차가운 개울에서 손과 발이 다 벌게질 정도로 목욕했던 일을 떠올리면, 우리의 운명은 그때 정해졌던 것 같지 않나요? - P11
내가 오크모스의 냄새를 아는 건 당신들이 내 안에 그 냄새를 주입했기 때문이에요. 한 남자만 사랑해야 하고, 한 남자에게만 충실해야 하며, 남자들의 구애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한 것과 마찬가지로요. 여기 있는 모두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저주를 받았어요. 내가 아는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사랑하지 않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데도 말이에요. 이런 게 당신들이 우리에게 주입한 꿈이죠. - P17
당신들이 그 일을 내 ‘발작‘이었다고 하는 걸 알아. 내가 프로그램에 따라서 감정과 관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불균형 전략들을 개발했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알아. 숫자들이 사는 것처럼, 별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짐승의 배에서 뜯어내어 무두질한 가죽처럼, 나일론 밧줄처럼. 어느 사물들이 서로 교감하며 살듯이 나도 그렇게 살아. 나도 그 물체들과 비슷해. 당신들이 나를 만들었고, 나에게 언어를 줬어. 하지만 나는 이제 당신들의 결함과 실패를 알고 있지. 당신들의 무능한 계획을 안다고. - P22
동료는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인간의 손이었지요. 동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야, 넌 배울 게 많아.‘ 이상한 말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성인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 P36
살아 있지 않았다는 걸 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내가, 인간인 내가, 사실은 이 방의 돌덩이들처럼 깎고 조각한 돌이었고, 그보다 더 지적이지도 않고 지각이 있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는 건? - P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