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라리부와지에르에서, 지금과 똑같은 공포와 불신 속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N. 의사의 판정을 기다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 삶은 오기노 방식과 1프랑짜리 자판기 콘돔 사이에 자리한다. 이것이 삶을 가늠하는 적절한 방법이다. 심지어 그 무엇보다 더 확실한. - P12
어느 오후에 이탈리아 흑백 영화 「직업」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 첫 직장의 사무실에 있는 젊은 남자의 삶은 느리고 우울했다. 영화관은 거의 비어 있었다. 비옷을 입은 신입 사원의 홀쭉한 실루엣과 그의 모멸감을 보며, 희망 없는 영화의 침통함 앞에서 나는 생리가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P13
어느 날 저녁, 표 한 장이 남았다고 하는 기숙사 여학생들한테 이끌려서 연극을 보러 갔다. 「닫힌 방」을 상연했고,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현대극을 본 적이 없었다. 객석은 꽉 차 있었다. 생리가 시작되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굉장히 밝은 무대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파란 드레스의 금발 에스텔과 눈꺼풀 없는 붉은 눈에 하인처럼 옷을 입은 사내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멋지다. 내 안의 이런 현실만 아니었다면.‘ - P14
그 후 몇 달의 시간은 흐릿한 불빛에 잠겨 있다. 끊임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내가 보인다. 이 시기를 생각할 때면 매번, ‘출항‘이나 ‘선악의 저편‘ 혹은 ‘밤의 끝으로의 여행‘ 같은 문학 작품의 제목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제목들은 매번 내가 그 당시 체험했던 느낌,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아름다운 무언가에 부합하는 듯했다. - P18
몇 해 전부터 일생일대의 사건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다. 소설에서 중절 일화를 읽으면 마치 말들이 순식간에 폭력적인 감각으로 변화해 버린 듯, 나는 이미지도 없고, 생각도 할 수 없는 충격 속으로 빠져든다. 마찬가지로, 그 시절 듣곤 했던 「자바의 여인」이나 「기억력이 나빠졌어」 같은 노래를 우연하게라도 듣게 되면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 P18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빠져 들어가, 거기에서 찾았던 것을 알고 싶다. 이런 탐사는 내 안과 밖에서, 단지 시간에 갇혀 있었을 뿐인 사건을 유일하게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틀 안에 기입될 터다. 당시 몇 달 동안 꾸준히 메모한 수첩과 내면 일기들은, 사실들을 설정하는 데에 요구되는 필연적인 지표들과 증거들을 제공해 주리라. 각각의 이미지와 ‘다시 만난다.‘라는 육체적인 감각이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몇 개의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까지, 무엇보다 "바로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이미지 하나하나 속으로 내려가 보려 할 것이다.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는, 당시에는 정말 견딜 수 없는 의미였거나 아니면 반대로 정말 위로가 되었을지 모를, 지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환멸 혹은 온화함으로 나를 감싸 버리는 그 문장들을 하나하나 다시 한 번 들어 보려고 하리라. - P19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 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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