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들이 주로 하는 일이 뭘까요? 제 생각에는 "음, 그랬군요" 하고 들어주는게 첫 번째 같아요. 그분들은 그게 사람을 살리는 말이라는 걸 아시는 거죠. - P84

옆에서 누군가가 "아, 그거 진짜 아픈데!" 이렇게 알아줘야 낫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걸 제일 잘 아는 게 바로 아이들이에요.
얼마 전 고등학교에 가서 인문학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제가 이렇게 시작했어요.
"내 첫사랑 미옥이가 전학을 갔어." 그때 학생들이 전부 다 이랬죠.
"오우~ 오, 힘들었겠다!" - P85

각 분야에 훌륭한 전문가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사실 우리를 진짜 치유하는 사람들은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인 듯해요. 제가 얼마전에 병원에 갔어요. 그 때 어떤 분이 조심스레 저에게 물어요.
"새로 오셨죠? 괜찮아요. 좀 있으면 링거 달 거고요. 오늘 피 뽑을 거예요."
저는 처음에 의사가 회진하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안 건데, 그 분이 그 병원에 3년째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래요.
(웃음) - P86

몇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녀석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고, 꼬리는 가을 억새 저리 가라 할 만큼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어떤 여행객의 뒷모습보다도 설레 보입니다. 처음의 설렘과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동시에 누리는 신공을 보여 주는 탄이. 녀석은 딱히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순간에도 자신의 견생을 진심으로 즐기며 사는 듯합니다. - P90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전 세계에서 성지 순례를 온 관광객들로 일찍부터 떠들썩합니다. 사실 이 짜이집의 단골이 된 건 옆 짜이집에 훨씬 손님이 많길래 괜히 마음이 쓰여서 자연스럽게 이 곳으로 발걸음이 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사장님과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동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슬쩍슬쩍 옆집을 쳐다보는 저와 달리 사장님은 옆 집 장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이 할 일만을 합니다. 비교 따위는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 P97

집에 돌아가면 뭐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배가 고픕니다. 고추장과 김치를 비벼 만든 비빔밥을 한 숟가락 입에 떠 넣고, 시원한 열무 물김치 국물을 들이켜면 세상은 다 내 것이고, 그 순간 만큼은 전학 간 짝사랑하던 아이와의 이별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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