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새로움. 익숙함은 인간 존재의 규칙이자 리듬 그 자체다. 위그는 손쓸 도리 없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그 익숙함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는 언제나 소중한 여인의 곁에서 십 년을 보냈기 때문에 그녀를 더는 끊어낼 수 없었고, 그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몰두하고 다른 얼굴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익숙함에 못지않게 본능적이다. 사람은 똑같은 행복을 소유하는 것에 싫증을 낸다. 건강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오로지 그 반대의 것을 인식함으로써 행복을 누린다. 사랑 역시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며 존재한다.
유사성은 분명 익숙함과 새로움을 우리 안에서 조화시키고 균등하게 하여 어떤 불확실한 지점에서 두 가지를 결합한다. 그것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지평선인 것이다. - P63

매일같이 만성절의 분위기를 띠는 브뤼주의 회색 빛 길거리가 지닌 우울함이란! 수녀들의 머리쓰개의 흰색과 신부가 입는 수단의 검은색으로 만들어진 듯한 이 회색이 이 도시에서 끊임없이 전염되고 있었다. 회색의 신비, 영원한 약식 상복의 색깔! - P65

위그가 제인을 만난 몇 달 동안 그 어떤 것도 그가 다시 겪고 있는 거짓말 같은 상황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변했던가! 그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거대한 공허 속에서의 외로움을 더는 느끼지 않았다. 예전의 그가 했던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제인이 그것을 위그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는 제인에게서 그 사랑을 다시 발견했고, 물에 그 모 습이 그대로 비친 달을 보는 것처럼 제인에게서 그 사랑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모습 전체를 일그러뜨리는 고약한 바람이 불어도 이 사랑의 그림자에는 어떤 물결도, 어떤 떨림도 생기지 않았다. - P70

위그는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슬픈 무도회에 온 것 같았다. 유사한 신체적 매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매력은 여전했지만, 왜곡된 방식으로 작용했다. 닮은 모습을 빼고는 제인은 그에게 저속해 보일 뿐이었다. 닮았다는 이유로 잠시 제인은 그에게 죽은 아내를,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타락해버린 아내를 다시 만나는 듯한 끔찍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감정은 예배행렬이 벌어지는 동안, 저녁에 성모 마리아나 성녀들의 복장을 한 행렬을 만났을 때나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행렬은 어둠 속에서 피가 흐르는 상처를 지닌 가로등 아래에서 외투와 성스러운 제복을 입고 있지만, 한층 더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약간은 취한 채 신비스러운 가장행렬에 휩쓸려 가는 것이다. - P79

성인이나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 이름을 딴 길들이 구부러지고, 비스듬히 돌아가고, 얽히고, 또 길게 뻗으며 중세풍의 작은 마을을, 다른 도시 안에 작게 분리되어 있고 한층 더 생기가 없는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텅 비어 있어 적막한 그 도시에서는 고요함이 전염성을 지녀 환자가 있는 곳에서처럼 조용히 걷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 P87

두 사람 사이의 유사성은 결국 몸매와 전체적인 모습에 서 나타날 뿐이다. 세세한 부분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나 위그는 자신의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주 꼼꼼하게 비교하면서 이를 제인의 탓으로 돌리고 그녀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고 생각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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