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에서의 친구들

낡은 육교를 지날 때 둘은 손가락을 걸쳤다가
층계의 마지막 칸에 와서야 깍지를 끼었다
그리고 다시 지상이었다 눈이 오네,
눈을 보며 우린
모두 친구였는데 지금은
페이스북 친구다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사진을 찍어 남긴다 눈 오는 날 먹기 좋은 메뉴를 파는 식당의 위치가 핀 고정 되어 있고 너는 고향에 그대로고
나로서는 다행이다 우리는
입시를 치르며 싸락눈처럼 뿔뿔이 흩어졌지 서로를 첫사랑이라 착각하거나
초콜릿을 나눠 먹거나 했지만
무엇 하나 남기질 못했지
사진 한 장
태그 한 개
없지
눈이 왔었는데, 그날의 눈발이 같은 기억인지 다른 기억인지
육교인지 지하상가인지 알 도리가
그중 내가 착각했던 친구는 페북도 하질 않아
도통 소식을 알 수가 없고 조금은 섭섭해서 양손을 모아 깍지를 낀다
사진을 찍거나 핸드폰을 만질 손이 없어지고 그을리는 기억
낡은 육교 아래를 전철은 흘러간다
마지막 역에 와서야 깍지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지상이었다 날이 좋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해
다행스러웠다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어서
눈을 보며 우린
모두 친구였지만 - P40

전화를 끊지 않은 우리 어머니, 엄마 아직도
생각이 난다 보드라운 슬픔이
학습지처럼 배달된다 해답을 보는
순간

엄마는 층계참에 주저앉아
소리 죽여 울고 있었지
아파트의 모든 벽에 소리가 부딪쳐 타올라
재가 되었다 나는 기침을 하였다 익은 면에 재를 뿌리며
오늘은 내가 요리사인데 어머니는
울고 우리 아이는 이제 곧
늦은 조기 교육을 시작하기로
아직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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