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교에서의 친구들
낡은 육교를 지날 때 둘은 손가락을 걸쳤다가
층계의 마지막 칸에 와서야 깍지를 끼었다
그리고 다시 지상이었다 눈이 오네,
눈을 보며 우린
모두 친구였는데 지금은
페이스북 친구다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사진을 찍어 남긴다 눈 오는 날 먹기 좋은 메뉴를 파는 식당의 위치가 핀 고정 되어 있고 너는 고향에 그대로고
나로서는 다행이다 우리는
입시를 치르며 싸락눈처럼 뿔뿔이 흩어졌지 서로를 첫사랑이라 착각하거나
초콜릿을 나눠 먹거나 했지만
무엇 하나 남기질 못했지
사진 한 장
태그 한 개
없지
눈이 왔었는데, 그날의 눈발이 같은 기억인지 다른 기억인지
육교인지 지하상가인지 알 도리가
그중 내가 착각했던 친구는 페북도 하질 않아
도통 소식을 알 수가 없고 조금은 섭섭해서 양손을 모아 깍지를 낀다
사진을 찍거나 핸드폰을 만질 손이 없어지고 그을리는 기억
낡은 육교 아래를 전철은 흘러간다
마지막 역에 와서야 깍지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지상이었다 날이 좋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해
다행스러웠다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어서
눈을 보며 우린
모두 친구였지만 -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