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부터 수많은 전쟁이 포로를 잡아 유통할 목적으로 발생했다. 세계의 부는 노예제와 맞닿아 있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뼈의길‘로 알려진 러시아의 콜리마 고속도로까지, 메소포타미아의 관개 시스템에서 미국 목화 농장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성매매에서 오늘날 여성 인신매매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진 값싼 의류에 이르기까지, 노예제는 고대와 현대의 연결점이다. 고대에는 노예가 정복 원정의 주된 이유였다. 노예는 강력한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었다. 관대하기로 유명한 카이사르도 갈리아에서 정복한 마을의 전체 인구 5만 3000명을 그 자리에서 팔아버렸다. 거래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노예 무역상들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전쟁터에 밤이 오면 신선한 상품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 P325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채권자는 부채를 회수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채무자를 매각할 수 있었다. 복수를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잔인하게 팔아넘길 수도 있었다. 플라톤도 그 운명을 겪었다. 플라톤은 시칠리아에 머 물면서 당시의 독재자 디오니소스의 통치 방식과 무지를 비판하여 그를 화나게 했다. 디오니소스는 플라톤을 처형하려 했으나, 플라톤의 제자인 디오니소스의 처남 디온이 플라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플라톤의 오만함은 처벌받아 마땅했기에 디오니소스는 그를 아이기나 섬의 노예 시장에 팔아버렸다. 다행히 이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플라톤의 사상에 반대하던 학파를 지지하던 동료 철학자가 그를 사게 되었고, 그는 플라톤이 아테네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로마법에 따르면, 노예는 주인의 소유였으며 법적 인격이 없었다. - P343
고대에 독서는 오늘날 같은 침묵의 독서가 아니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늘 큰 소리로 읽었다. 고대인들의 관점에서 글자를 소리로 만드는 작업은 일종의 주문과도 같았다. 고대인들은 호흡이 사람의 영혼이 자리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장례 비문을 보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서 그 무덤에 누가 누워 있는지 알리고자 지나는 행인에게 "목소리를 빌려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구절이 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글로 된 텍스트가 온전히 완성되려면 살아 있는 목소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글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읽기를 시작한 독자는 정신적이고 음성적인 점유물이 된다. 다시 말해 작가의 호흡이 그의 목에 침범하는 것이다. 독자의 목소리는 글자에 결합된다. 작가는,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독자를 소리의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다. 따라서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독자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고대인들은 읽기와 쓰기를 노예가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예의 기능이 바로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P348
라틴어로 책(libro)은 ‘자유(libre)를 의미하는 형용사와 비슷하게 들린다. 이 두 단어의 인도유럽어 기원은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와 같은 로망스어는 그런 발음의 유사성을 물려받았고, 이는 ‘독서와 ‘자유를 동일시하는 언어유희를 가능케 한다. 모든 시대의 학식 있는 사람들에게 이 둘은 결국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열정이었다. - P351
키케로는 연설과 에세이로 무엇을 얻었을까? 사회적, 정치적 야망의 확장. 명성과 영향력 고양. 대중적 이미지 형성. 친구든 적이든 그의 성공을 알아주는 것. 뛰어나지만 가난한 작가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사람들도 바로 그 영광과 화려함과 찬사를 추구했다. 책은 무엇보다 특정인의 위신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문학은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물이나 개인적 대여로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유통되었으며, 소수의 문화 엘리트 그룹, 부유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 여했다. 그 공동체는 재능에 따라 노예나 천한 출신의 작가도 보호했다. 강력한 사회관계 없이는 독자도 작가도 모두 생존이 불가능했다. - P354
디지털 혁명 시대인 지금, 문화를 아마추어의 취미로 이해하는 고대의 귀족적 생각이 다시 자리 잡는 것 같다. 작가, 극작가, 음악가, 배우, 영화인이 생계를 유지하려면 직장을 잡고 여유 시간에 예술을 해야 한다는 옛 노래가 다시 들리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서, 창조적 작업은 고대 로마처럼 무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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