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인 지금의 내 모습이 막연히 꿈꾸던 것과는 아주 다르듯, 매번 이사할 때마다 어떤 집을 찾아낼지 역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예상 밖의 집을 거점으로 삼은 나는 삶에 익숙해지고 낯설어지기를 반복했다. 집을 옮길 때마다 매일 보는 풍경, 매일 다니는 동선의 기본값이 설계되었고, 집의 평수에 맞춰 품거나 버릴 물 건을 결정해야 했다. 생활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머무름을 뜻하는 ‘거주‘는 꼬물대는 생활을 내포한 활동 명사일지도 모른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하러 나갔다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곳. 집이라기보다는 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작은 공간. 자취 한 호수에서의 경험들로 나는 달라져갔고, 달라진 나는 내 삶에 변곡선을 삐뚤빼뚤 그려나갔다. 비록 어릴 때 꿈꾸던 어른의 모습과는 다를지 몰라도 나는 그 변곡선이 꽤 마음에 든다. - P10
그 모든 게 다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빌미였다. 빌미로 만든 경험이었지만 낯선 도시에 모인 방방곡곡의 얼굴들은 내게 자극을 줬다. 사람이란 프리즘으로 새로운 세계를 봤고, 그 세계에는 또 새로운 사람이 있 었다. 하고 싶은 게 있든,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든 간에 비슷한 또래들은 상대의 취향을 통해 새로 배우고 감화되어 갔다. 함께 어울리다가 서로에게 반하게 되는 지점에서 다들 자기 세계의 작고 여린 싹을 발견했다. 서로 가 영감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기를 함께 통과하고 있었다. - P22
더 많은 방을 만들기 위해 복도에다 창문 없는 내측방 을 만든 원룸텔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살아볼 때 그 불편 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아침에 햇빛 하나 없는 곳에서 눈을 떠야 하다니 정말 감옥도 아니고 뭐란 말인지. 하지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룸텔은 다 그런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사람이 살 구조가 아니라 건물주의 돈이 되는 구조.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주거 형태는 전적으로 덜 간절한 사람의 편의에 맞게 설계되고 대물림 된다. - P25
방을 나설 때마다 열쇠로 방화문을 잠그고 복도를 나서면 한쪽 끝에 붙어 있는 비상구 표시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 비상구 표시를 주시하곤 했다. 유사시 이 좁은 방과 복도를 내가 제일 먼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제발 ‘유사시‘와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 P26
보증금 없이 급히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데에는 원룸텔만 한 선택지가 없다. 복학까지는 4개월 남짓. 이것도 다 인생 경험이겠거니, 나중에 다 피와 살이 되겠거니 여기며 꿋꿋한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걸로 외로운 원룸텔 생활 속에 고립되지 않으려 했다. 씩씩할 것, 울지 않을 것.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그럴듯하지 만 인과관계에 명확한 결함이 있는 이 슬로건이 유행하기 전인데도, 이미 어떤 환경적인 압박으로 인해 스스로 캔디처럼 살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재산도 없고 재능도 없으니 ‘열심히‘로 나를 똘똘 뭉쳐 놓지 않으면 쉽게 바스러져 버릴 것 같은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성장하는 느낌이 들 때면 가끔 자랑스러웠지만, 실은 성장할 것투성이인 서툰 내가 너무나도 꼴 보기 싫었던 스물두 살. 낯선 도시에서 끈 떨어진 연이 되지 않으려고 알바하는 틈틈이 보고 듣고 느끼려고 애를 썼다. 서울 지리가 조금씩 눈에 드는 건 좋았지만 실은 복학 뒤가 막막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지난달보다 이번 달 형편이 나아진 것이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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