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화 과정에서 생긴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가축화된 개의 야생 조상인 이리와 수많은 개의 품종들을 비교해보자. 그레이트데인 같은 개들은 이리보다 훨씬 크고 페키니즈 같은 개들은 훨씬 작다. 또 그레이하운드 같은 개들은 날씬해서 경주에 알맞은 체격이고, 닥스훈트 같은 개들은 다리가 짧아서 경주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 개들은 털의 모양이나 색도 서로 크게 다르고 어떤 개들은 아예 털이 없어졌다. 폴리네시아인과 아즈텍인들은 먹기 위해 기르는 품종도 개발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닥스훈트와 이리를 비교해본다면 전자가 후자에서 파생되었다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P249
식물의 발아, 성장, 질병에 대한 저항력 등은 바로 기후의 그 같은 특 성들에 적응하고 있다. 철따라 달라지는 낮의 길이, 기온, 강우량 등은 종자가 발아하고, 묘목이 성장하고, 다 자란 식물이 꽃, 종자, 과일 등을 발육시키도록 자극하는 신호가 된다. 각각의 식물은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진화되었으므로 그 환경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계절적 추이의 신호에 반응하도록 자연선택을 통해 유전적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같은 추이는 위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적도 지방에서는 낮의 길이가 1년 내내 일정하지만 온대성 위도에서 는 동지에서 하지로 다가갈수록 점점 길어졌다가 나머지 반년 동안은 다시 짧아진다. 생장철(기온과 낮의 길이가 식물의 성장에 적합한 기간)은 고위도 지방일수록 짧고 적도에 가까울수록 길다. 그리고 식물은 각 위도에서 많이 생기는 질병에도 적응하고 있다. - P282
오늘날에는 우리의 식사에 세계 각지의 먹거리가 뒤섞여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인들이 패스트 푸드 식당에서 먹는 전형적인 음식에는 닭고기(중국에서 처음 가축화), 감자(안데스산)나 옥수수(멕시코산), 양념으로 들어가는 후추(인도산), 그리고 이 음식을 씻어내릴 커피(에티오피아 원산) 한 잔 따위가 포함된다. - P284
질병은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므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 중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세균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 위대한 장군들을 칭송하는 전쟁의 역사는 인간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한 가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즉 과거의 전쟁에서는 반드시 가장 훌륭한 장군이나 무기를 가졌던 군대가 승리하지는 않았으며 가장 지독한 병원균을 적에게 퍼뜨리는 군대가 승리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 P299
세균도 기본적으로는 다른 생명체와 똑같이 진화한다. 진화의 과정은 가장 효과적으로 새끼를 낳아 그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장소에 전파시킬 수 있는 개체들을 선택한다. 세균을 말할 때 전파‘ 라는 용어를 수학 적으로 정의한다면 원래의 환자 한 명에 대해 새로 생겨나는 피해자의 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숫자는 각각의 피해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새로운 피해자들을 감염시킬 수 있느냐, 세균이 한 피해자로부터 다음 피해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느냐에 달려 있다. 세균들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또 동물들에게서 사람들에 게로 전파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진화시켜왔다. 잘 전파되는 세균일수록 더 많은 새끼를 남길 수 있으며 결국 자연선택에서도 유리해진다. 인간의 질병에서 비롯되는 ‘증상‘들은 사실상 매우 영리한 세균들이 인간의 몸이나 행동을 세균이 전파되기에 알맞도록 개조시키는 과정이 밖으로 드러난 것일 때가 많다. 병원균이 가장 힘들이지 않고 전파되는 방법은 다음 피해자에게 전해질 때까지 그냥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이 전략을 사용하는 세균들은 한 숙주가 다음 숙주에게 먹힐 때까지 기다린다. 예를 들어 살모넬라균은 우리가 이미 감염된 달걀이나 육류를 먹음으로써 전염된다. 또한 선모충증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돼지로부터 전염되는데 우리가 돼지 를 잡아서 제대로 익히지 않고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아니사키스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생선회를 즐기는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이 생선을 날로 먹었을 때 가끔 감염된다. - P301
세균은 인간의 몸속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진화되었으며 피해자가 죽거나 저항할 때 새로운 피해자의 몸으로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병원균들은 피해자에게서 피해자로 옮겨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진화시켜야 했다. 이러한 수법 중에는 인간이 흔히 "질병의 증상" 으로 경험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 대응 방법을 진화시켜왔고 병원균들은 다시 거기에 대한 대응 수법을 진화시키는 것으로 대처해왔다. 그리하여 인간과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병원체들은 점점 더 격화되는 진화적 경쟁 관계 속에서 서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패배의 대가는 어느 한쪽의 죽음이며 자연선택이 심판을 맡고 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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