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친구 조반니와 알베르티노가 나타났다. 조반니는 차에 오르면서 물었다.
"지겨웠어?"
파시오나리아가 대답했다.
"나는 안 지겨웠어요."
"너는 조용히 해!"
마르게리타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렇지 않아요! 만약 내가 엄마를 구해 주지 않았다면, 담배를 피웠다고 신부가 벌금을 물렸을 거예요!" - P330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마르게리타가 외쳤다.
"너희들은 다른 세대에 속해! 너희들에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 페니실린, 통증 없는 치과, 전화, 엘리베이터, 자동차, 라디오. 진공청소기, 전기냉장고…"
파시오나리아가 말을 가로막았다.
"냉장고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너희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잖아!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세대에 속해. 모든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대의 사람이란 말이야. 그래서 주저주저하며 엘리베이터를 타지. 우리에게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새롭고 괴상한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치과를 무서워해.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치과를 고문실 같은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지금 엄마는 젊지 않고 나이가 들었어요. 그리고 이빨이 아픈 것은 지금이에요" - P337

식사를 하는 도중에 야채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큰소리로 "햄릿!"을 외쳤다. 그러자 식당 주인이 아닌 강아지가 나타나 계단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낑낑거렸다. 강아지는 내가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한 번 햄릿을 불렀다. 그러자 그 강아지가 또다시 나타나 나를 바라보면서 낑낑거렸다. 그 뒤 식당 주인 햄릿도 나타났다. 나는 야채를 주문한 다음 그에게 말했다.
"저 강아지 이름이 뭔지 나는 알아요."
그리고 유리창을 향해 다시 한 번 "햄릿!"을 외쳤다. 강아지는 어김없이 문 앞에 나타났고, 나를 보며 짖어 보려고 했다. - P343

내가 다시 햄릿을 바닥에 내려놓자 햄릿은 위안이 된 듯했다. 하지만 작업실을 나가 기 전에 바닥에서 끈 조각을 발견했고, 그것을 갖고 놀려고 이빨로 물었다. 불행히도 그것은 책상의 전등과 연결된 전선이 었다. 햄릿은 꼬인 두 가닥 전선 중의 하나에 이빨로 구멍을 뚫다가 강한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약간 울었다.
"햄릿, 내가 말했잖아. 기계의 발전을 믿지 말고 자연에 매달려 있으라고!"
나는 경고했다. - P352

"당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이오?"
마르게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조반니노! 어느 순간 여기 무엇인가를 느끼는 데..."
"여기? 어디 말이오?"
마르게리타는 우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누구도 괴로움의 위치에 대한 지도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영혼 속에 침투하는 괴로움의 위치를 알 수 있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잘 생각해 보라고 달랬다.
"마르게리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기왓장을 맞는 것 같은 심리적 동요를 겪을 필요는 없어요. 그 괴로움을 분석해 봅시다. 만약에 갑자기 어떤 괴로운 느낌이 영혼에 침투한다면, 어느 지점에서 침투가 시작되오?"
"영혼이란 확정된 것이 아니에요. 형태도 없고, 둘레도 없고, 중심이나 표면도 없고, 측면이나 변, 각도도 없어요. 그러니 ‘지점‘도 없지요. 아니면 당신은 내가 영혼 대신 어떤 평행 육면체나 십이면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 P369

이번 여름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옛날의 눈, 전쟁 이전의 눈이었다. 나는 8월 휴가철의 황량한 도시를 돌아다녔다. 도시에는 무더위와 정적, 일상의 권태만 남아 있었다.
‘죽어야 할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무엇인가를 믿었던 사람들도, 다른 것을 믿었던 사람들도 죽었다.‘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사건 속에 휘말렸던 사람들도 죽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은 부드럽게 그들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어디에선가 읽은 이 글귀들이 지금 내 귓전에 맴돌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았다면 분명히 지금 내가 썼을 것이다. 대략 그런 정도의 말을.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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