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서류 가방을 찾아요. 어디 있어요?"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서류 가방을 찾은 게 아니야! 네 책가방을 원하는 거야." 파시오나리아는 아주 놀란 것처럼 중얼거렸다. "내 가방이요? 무엇에 쓰게요? "네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 싶어." 파시오나리아는 천천히 잡지들이 쌓여 있는 구석으로 가면서 투덜거렸다. "사람들이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면 훨씬 좋을 텐데!" - P264
"조반니노, 벌써 1년 전부터 나는 자네의 상을 생각하고 있었네. 분명히 무언가 특별한 게 나올 거야.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얼굴이지. 이제 의자에 앉아서 창문 손잡이를 바라보게. 나는 의자에 앉아 창문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조각가는 몸을 돌리더니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나는 첫 인상의 강렬함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 호흡을 멈추었다. 곧 프로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작업을 할 게 전혀 없네. 자네가 아니야." 그 목소리에 서려 있는 실망감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더듬거렸다. "미, 미안하네. 아마 빛 때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전혀 달라. 5년 전 밀라노에서 자네를 보았을 땐 그렇지 않았어. 무언가를 말해 주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 이마 위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불그스레한 눈자위, 입가에 단단하게 팬 주름…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어. 지금은 평온한 사람의 얼굴이야. 편안하게 살고, 아무 생각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는 사람의 얼굴이지. 그러니까···." 내가 말했다. "간단히 말해 얼간이 얼굴이지." "아니. 단지 관심을 끌지 않는 얼굴이야." - P275
"그럼 당신이 생각하기에 나는 누군데?" "내 생각에 당신은 가족의 ‘망신‘ 이에요. 그리고 저 사람들 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벌써 몇 해 전부터 매주 그들을 모욕하고, 또 콧구멍이 세 개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등 그들을 조롱하는 사람이지요." "그게 무슨 상관이오? 지금 나는 언론상의 논쟁을 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맥주 한 잔 마시러 가려는 건데." "과거는 맥주 한 잔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모욕을 주는 사람은 그 모욕을 모래 위에 쓰지만, 모욕을 받은 사람은 청동에 새겨 두는 법이에요." - P319
나는 회랑의 아치 아래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반니노, 저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보았어요!" 마르게리타는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예요! 조반니노, 저 사람들이 어떤 얼굴인지 보이지 않아요?" 사실 그들의 얼굴이 그다지 친절해 보이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당히 어두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마르게리타, 생각하는 것은 자유요. 말하고 표현하는 것도 자유지. 각자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 자기가 원하는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있어." - P321
마르게리타는 여전히 아득한 목소리로 나에게 담배를 달라 했다. 나는 담배를 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마르게리타는 담배 연기를 몇 번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곧바로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 나에게 매달렸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검은색 옷을 입은 커다란 신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창 앞에 서 있었다. 신부는 몸을 숙였다. "정숙한 부인들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그는 묵직하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절대 정숙한 여자가 아니에요." 파시오나리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신부는 어디서 그 목소리가 나왔는지 확인하더니 못마땅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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