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의 주인공 한스는 이 흑맥주를 아침마다 한 잔씩 마신다. 어쩌다 한 번 마시는 게 아니라 거의 고정된 아침 메뉴다. 소설에는 그저 ‘흑맥주‘라고 되어 있지만, 뤼베크 태생으로 뮌헨에서 오래 산 토마스 만 이 소설에 쓴 흑맥주는 튀링겐과 작센의 흑맥주인 슈바르츠 비어가 아닐까 싶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신경을 마비시키며, 멍한 기분이 들게 한다면서 한스는 흑맥주를 마신다.
나는 이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좋아하는 부분을 끝없이 나열할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체질에 좋다고 해도 그렇지 아침마다 맥주를 마시면 너무 나른하지 않을까 싶었기에. - P228

달기만 하면 안 된다. 달면서 시거나, 달면서 쓰거나. 아니면 달면서 진하거나, 달면서 이를 데 없는 향기가 나거나. 그래야 술이라고 생각해 왔다. ‘술이 익는다‘는 것은 여러 맛이 경쟁하고 또 화합하며 각축을 벌이는 과정이고, 술을 열었을 때 농익은 이 맛들이 액체로, 기체로 풀려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르르‘ 말이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 P240

『모비 딕』의 첫머리에 나오는, 바다로 떠나려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좋아한다. 이슈미얼은 지갑에는 거의 돈 한 푼이 없고 육지에는 더 이상 흥미로운 것이 없을 때 세상의 바다를 둘러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며 고래잡이 어선에 지원한다. 그는 바다로 나가는 것만이 울화증을 떨치고 날뛰는 피를 잠재우는 방법이라며, 자신에게는 그것이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다고 말한다. - P255

섀클턴 위스키의 병뚜껑에는 나침반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병 뒤에는 이런 글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거기에 도달하려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 어니스트 섀클턴". 병 앞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다. "인내심 endurance을 통해 우리는 정복할 것이다." 섀클턴 가문의 가훈이다. 섀클턴은 남극에 세 번째로 갈 때 타고 갈 배의 이름을 가훈에서 따와 ‘인듀어런스‘호로 지었다.
인듀어런스호의 ‘리츠 호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다정하고, 세심하고, 헌신적으로 선원들을 위했다는 섀클턴은 갑판 사이에 있던 창고를 개조해 선실로 만들게 했는데, 그 선실이 어찌나 아늑했던지 고급 호텔의 대명사인 파리의 리츠 호텔 이름을 따서 ‘리츠‘로 불렀다고 한다. 이들은 아늑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리츠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체스를 두고, 축음기로 주간 음악 감상회를 열었다. - P256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감각하는 것이다.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후의 죽음』을 읽다 보면 이런 자문자답이 느껴진다. 헤밍웨이는 사는 동안 진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감각을 계발하고 또 계발해서 완전히 향락할 수 있도록.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사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그는 말한다. 지식과 감각을 연마함에 따라 술에서 무한한 향락을 얻을 수 있다고. 딱 이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게 아닌가. 신기하게도 알면 알수록 맛은 더 깊어지고, 더 깊어질수록 아는 것도 늘어나는 게 바로 술 마시는 기쁨 아니던가.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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