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질투심이 많다. 끓일 땐 딴 짓은 물론이고 딴생각도 하면 안된다. - P191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애매한 시간과 공간의 틈을 떠도는 이 아이들은, 느닷없이 닥쳐온 생의 불가해함이 견딜 수 없어 몸부림을 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199

어디냐?
아들이 있는 장소가 궁금한 게 아니라 그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아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무의미한 발성에 불과하겠지만 그 질문은 매번 박으로 하여금 자신이 있는 곳, 진저리나지만 버텨야 하는 장소에 대한 이질감, 나아가 두려움에 가까운 혐오감을 즉각 환기시켰다. - P208

박도 요즘은 전화보단 문자질에 빠져들었다. 어리석고 맹한 세계만이 줄 수 있는 위로도 있었다. 무신경하고 무의미한 문자들 속에는, 박이 자신의 일상에서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사소한 것에 대한 감탄, 매사가 처음인 듯한 놀람, 진정 없는 후회, 회한 없는 망각,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하찮음에 대한 무감각. 이를테면 기이한 마술이나 지난한 역경없이 단숨에 도달할 수 있는 무중력의 차원 같은 것. 그러니까 어디냐?와 그만하시면 안돼요?의 세계로부터 아득히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말의 부스러기들이었다. - P213

둘 다 혹은 둘 중 하나가 부서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말하겠지. 둘 중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지, 당연히. 그런데, 그 둘 중 하나가 자기 쪽이 된다면 어떨까. 대부분은, 그렇다면 차라리 둘 다, 쪽을 선택할 것이다. 기쁨보단 고통에 동반자가 더 필요할 테니. 그렇다면 둘 중 하나를 정하는 문제는 어떨까.
사실 누가 그 자리에 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가피하게 제단 에 놓여야 한다면 단죄되어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 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었다면 그건 그 자신의 죄의 단독성 때문이 아니다. 죄란 얼마나 흔해빠진 것인가. 오래된 종교의 경전에서도 보았듯 오히려 가장 순결한 자가 제단에 오르곤 하는 것이다. - P240

대구를 생각하자 한 남자가 떠오른다. 바뗄이란 괴팍한 놈이 있었지. 프랑쑤아 바뗄. 사백년 전 당대 최고의 요리사였던 그는 어느 귀족의 잔치에 수석 요리정으로 초빙되었다. 많은 손님들이 초대되었고 정원에는 거대한 식탁이 줄지어 차려졌다. 호사를 극한 잔치는 사흘 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바델은 마지막 날 오후가 기울어갈 무렵, 향락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성의 뒤편으로 조용히 걸어나가 인적이 드문 숲 언저리에서 자살했다. 마르쎄이유 항에서 보내기로 한 생선 – 정확히 어느 종류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이 약속한 시간을 지나서도 도착하지 않아 마지막 코스가 되는 그 날의 만찬 준비에 차질을 빚은 것이 까닭이었다. 새우와 관자와 생선살이 듬뿍 든 부야베스 대신 담백한 단호박 수프를 끓이거나 넙치구이 대신 송아지갈비를 내놔도 뭐랄 사람은 없었다. 그가 견디지 못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르와조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바델인 듯 선명하게 깨달았다. 갑자기 르와조의 피돌기가 격해졌다. 난, 최선을 다했어, 늘.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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