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정죄이자 속죄라고 하는 플라톤은 놀랍게도 『국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가 정부의 일은 여자가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자연적 능력은 남녀 모두에게 유사하게 분배되기에 여성은 본질적으로 남성과 동일하게 모든 일에 참여할 수 있다." - P219
어느 날 한 남자가 히파르키아에게 물었다. "베틀을 버렸다는 여자가 당신이오?" 그러자 그녀가 답했다. "맞아요. 천을 만들며 낭비할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나요?" 히파르키아는 정신이 말을 엮는 베틀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아직도 찾아볼 수 있는데, 씨실, 날실, 이야기를 엮다, 이야기를 짜다‘ 등의 표현이 그러하다. 말의 씨실과 날실의 조합이 텍스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포르투갈 시인 소피아 드 멜루 브레이네르(Sophia de Mello Breyner)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나는 말의 실을 놓치지 않고 미궁을 주유하는 사람들의 혈통에 속하지요." - P220
프랑스 작가인 자크 라카리에르(Jacques Lacarriere)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의 편견을 파괴하려고 애쓰면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국가 간의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각 민족의 도덕적 경계, 각 개인의 경계라고 했다. - P229
헤로도토스는 이 이야기의 근거로 뜻밖의 출처를 든다. 그는 페르시아의 교양인들로부터 충돌의 근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반면 페니키아인들 버전의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나는 사건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그들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년간 여행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헤로도토스는 증인들이 같은 사건에 대해 모순된 설명을 하고, 사건을 잊어버리거나 평행우주에서나 일어날 법한 식으로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진실이란 파악하기 어려우며, 과거를 있는 그대로 해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움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역사」에는 "내가 알기로는", "내 생각에는",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사실인지는 모르나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등의 표현이 많다. 현재의 다중관점주의가 있기 수천 년 전, 최초의 그리스 역사가는 기억이 연약하고 덧없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안도감을 찾기 위해 과거를 왜곡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시민 케인」, 「라쇼몽」 같은 작품에서 그렇듯이,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그 일면이나 다양한 버전들 혹은 무한한 해석만을 보게 된다. - P230
우리는 낯선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숙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정체성과 대조할 때라야 우리의 정체성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타자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사람이다. - P231
사실 에우로파 납치에 대한 전설은 일종의 상징이다. 납치된 공주의 이야기 뒤에는 아주 먼 역사적 기억이 숨 쉬고 있다. 바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서양으로 향하는 동양의 아름다움과 지식의 이동이다. 특히 페니키아 알파벳이 그리스에 도착한 것이 그렇다. 유럽은 문자, 책, 기억이 받아들여지며 태어났다. 그 존재 자체가 동양에서 납치된 지혜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야만인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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