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고통의 이면에는 부끄럽다는 느낌이 포함 된다. 지상의 삶에 무능한 인간이라는. - P147

말해질 수 있는 건 고통이 아니야.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참을 수 있다는 거야. 살다 보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그 말을 해 주고 싶다. - P158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삶은 스스로 완벽하다는 것을. 어떤 흐트러진 무늬 일지라도 한 사람의 생이 그려 낸 것은 저리게 아름답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은 제 스스로 빛을 내는 경이로움이라는 것을. - P161

그를 쳐다보자 오래전 수업 시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러분, 우주 공간엔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 소리가 흐르고 있어. 별들이 부르는 노래라고나 할까. 당신들 말이야, 언젠가 그대들 삶의 절정에서 그 음악 소리를 듣길 바라. 나는 어쩌면 지난 어느 날 그 천상의 음률을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 아빠 눈 속에 별이 있어, 그 속삭임 말이다.
그러자 나는 어딘가 이 방처럼, 초침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하고 어둑한 구석으로 가서 좀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서 미끄러진 유리잔처럼 깨어져 어지럽게 흩어진 내 생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선택에 대해, 걸을 때마다 뒤꿈치에 불이 켜지는 야광 운동화를 신어 보지 못한 채 떠나 버린 딸아이를 생각하며, 무엇보다 이 사람을 처음 만난 날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잃어 버린 것들에 대해. - P161

"개미나 바퀴를 죽일 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나요?
어때요? 그냥 발바닥에 붙은 흙덩이를 문지르는 느낌인가요? 아니면 사소한 적의라도 가져야 하나요? 이 일을 하려면?"
"적의라, 개미한테 그런 걸 느껴 본 적은 없어요. 모래처럼 작아 보이지만 그들은 모이면 대단한 일을 해내지. 일개미는 일생을 일만 하다 죽어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몸을 도구화해서 큰 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거요. 그들의 일생에 자신의 의도라든가 자의식 같은 건 없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일하기 좋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큰 턱을 휘둘러 죽도록 일만 하다 사라지는 거요. 때로는 자신의 알까지 다른 개미의 먹이로 제공하면서. 그것들은 삶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일상에 대해 한 번도 회의해 보지 않고 아무런 불만 없이 소멸되어 버리는 거지. 그러니까 그것들을 죽이는 데 동정심이나 연민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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